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0월 27일_소란을 피우는 자에게 호의를 베풀지 말라

SSODANIST 2025. 10. 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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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코끝이 찡하게 시리다. 하지만 하늘은 맑다. 

기온: 최저 2도, 최고 11도


월요일 오후,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카페 한쪽 자리에 앉아 있다. 창가로 늦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그 빛 속에 먼지가 천천히 춤춘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누군가는 전화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누군가는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린다.

나는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조용히 생각한다.

"우리는 왜 늘 목소리 큰 사람에게 끌릴까?"


🔊 시끄러운 세상일수록, 조용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

요즘 세상은 소리를 낸 사람이 이기는 세상처럼 보인다. 회의실에서, SNS에서, 심지어 가족의 저녁 식탁에서도. 크게 말하고, 빨리 주장하는 사람이 '주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침묵하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 '소극적인 사람'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 우리가 잃는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듣는 힘, 생각의 간격, 그리고 사람 사이의 존중. 소란은 늘 확신을 가장하지만, 그 겉모습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상대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다."

 

그렇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소란에 나의 평온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진짜 문제다.


🌾 조용함은 약함이 아니다

한창 일도 해야하지만 즐겁기도 해야할 40대 후반, 심적 고통을 경험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큰 깨달음은 조용함은 약함이 아니라 절제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회의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 나도 맞서 싸웠다.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싸움 끝에 남은 건 텅 빈 가슴과 두근거리는 심장뿐이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피검사를 하고 심전도를 찍으며, 급하게 정신과를 찾아 진료를 받으며 내가 이기려고 했던 싸움들은 애초에 싸울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강한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아는 사람이다. 조용한 사람은 상대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믿는다. 감정이 가라앉고, 상황이 명료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버락 오바마의 비서실장이었던 레이첼 필드는 "방 안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 종종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제야 그 기다림 속에서 얻는 통찰은 어떤 외침보다 멀리 간다는 것을 그 의미를 알것 같다. 


🏃‍♂️ 오분 달리기가 가르쳐준 것

매일 아침 오분을 달린다. 오분이면 충분하다. 빠르게 달릴 필요도 없다. 그저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느끼고, 발이 땅을 딛는 리듬에 집중한다.

처음엔 이것도 버거웠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마음이 초조했다. '이렇게 짧게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작은 루틴이 내 모든것을 바꿔놓았다.

달리는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진짜 중요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제 나를 화나게 했던 일, 내일 걱정하던 미팅, 그 모든 것들이 오분의 달리기 속에서는 작고 가벼워진다.

찰스 디킨스는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으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혼자 걷는 시간을 가진다. 움직임 속에서 마음이 정리된다.

오분의 달리기는 내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 여유는 결국 통제의 다른 이름

나이 들면서 여유란 세상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을 잡으려 했다. 사람들의 마음도, 일의 결과도, 미래의 불확실성도. 그렇게 꽉 쥐면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마음의 병을 겪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심장 박동을 통제할 수 없고, 갑자기 몰려오는 불안을 통제할 수 없고, 내일 아침 내가 어떤 상태일지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통제를 포기하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노자는 《도덕경》엔 유명한 말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억지로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나온다. 화를 참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면, 그 화가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자극하는 그 사람도, 내일이면 잊힐 일이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조용히 중심을 잡는 법. 그게 진짜 어른의 품격이 아닐까.


🎯 소란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

요즘 나는 화를 참아내는 연습을 한다.

불안으로 부터 멀어지는 연습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낼 때,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세 번 숨을 쉰다. 들이마시고, 참고, 내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올 뻔했던 날카로운 말이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 사람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내 커피에 집중한다. 그의 목소리는 배경음악일 뿐이다. 나의 평온을 지킬 책임은 나에게 있다.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좋은 예가 되는 글이 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을 자유, 그것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 오늘의 명상

"소란을 피우는 자에게 호의를 베풀지 말라. 그대의 평온은 그대가 지켜야 할 마지막 성채이므로."

오늘 하루, 누가 소리를 높이더라도, 그들의 분노에 마음을 내주지 않으리라.

나의 에너지는 분노가 아니라 평정으로 증명된다. 아침에 오분을 달리고, 오분을 쓰는 이 작은 루틴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세상의 소란이 나를 흔들 수 없다는 것을, 매일매일 증명해나간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만난 불청객,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나는 진짜 승리는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이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오분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쓴다. 오분이면 충분하다.

이 작은 실천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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