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0월 28일_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법

SSODANIST 2025. 10. 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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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추워 졌다. 입김이 난다.

기온: 최저: 1도, 최고: 13도


아침의 공기가 맑고 차다.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산책길을 걷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느려진다. 가슴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공기의 온도가 느껴진다. 차갑지만 따뜻하다. 이 역설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요즘 나는 '빨리'보다 '천천히'의 무게를 생각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속도를 재촉한다. 더 빨리 결정하고, 더 빨리 말하고,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빨리 살아야 한다고. SNS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화려한 성취를 보여주고, 뉴스는 매 순간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전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인생의 중반에 만난 불청객인 병을 진단받았을 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몸이 먼저 항복 선언을 한 겁니다." 내 마음이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살아온 세월, 그 대가가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찾아왔다. 그때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속도는 결국 나를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 숨의 속도에 맞춰 사는 법

달릴 때마다 나는 호흡의 리듬을 느낀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무작정 빨리 달리려 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막혔다. 다리가 아니라 폐가 먼저 항복했다. 너무 빠르면 숨이 막히고, 너무 느리면 힘이 빠진다. 그 사이 어딘가에 내 호흡의 리듬이 있었다.

신기한 건, 몸이 아니라 숨이 내 삶의 속도를 정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숨의 속도를 존중할 때,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내가 숨을 억지로 빠르게 만들려 할 때, 더 빨리 지쳤다.

이제 나는 하루를 시작할 때 잠시 멈춰 선다. 찻물을 끓이기 전, 핸드폰을 확인하기 전, 그 어떤 것도 하기 전에 의자에 앉아 호흡을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들숨, 날숨. 그 짧은 멈춤 속에 내가 어제보다 얼마나 서두르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어제 하지 못한 일, 오늘 해야 할 일, 내일 다가올 불안들이 벌써부터 나를 채찍질한다.

장자(莊子)는 『齊物論』에서 말했다. "무위(無爲)는 멈춤이 아니라, 얽히지 않음이다."

그 말이 요즘은 참 가깝게 들린다. 멈춘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잡지 않아도 될 것을 놓아주는 일이다. 내일의 걱정, 남의 시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그런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쉼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는  "속도는 악마의 것이다(Speed is the devil's)." 고 표현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나은 곳에 도착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천천히 걸어야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다.

🌱 서두름의 뿌리는 '두려움'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뒤처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을까, 인정받지 못할까, 잊혀질까, 사라질까 두려워서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야 했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고, 나이에 맞는 '성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흔을 넘기고 나서는 그 강박이 더 심해졌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나를 더 빠르게 달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은 그리 빨리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늘 제 속도로 흘러가고, 우리가 그 위에서 허둥대며 쫓기고 있을 뿐이다. 강물은 흐르는데, 우리는 그 강물보다 빨리 가려고 발버둥 치며 익사하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찾아온 첫날을 기억한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죽는 줄 알았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하고 급히 병원을 찾아 갔지만 의사는 "이상 없다"고 했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두려움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서두르게 했는지. 심리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것은, 내가 평생 "충분하지 않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조금 늦게 걷는다고 해서 인생이 덜 풍성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느린 걸음 사이로 보이지 않던 풍경이 들어온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아침 해가 만드는 그림자의 각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 빨리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 늦추는 용기

마음을 늦춘다는 건 포기하거나 나태해지는 게 아니다. 그건 '자기 자신을 다시 맞추는 행위'다. 시계가 빨라졌다고 해서 시간이 빨라지는 건 아니듯, 내가 서두른다고 해서 인생이 빨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리듬이 깨질 뿐이다.

달릴 때는 숨이 거칠지만, 걷다 보면 다시 리듬이 잡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멈춤 속에서 방향이 보이고, 고요함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 "너는 이미 충분해. 지금도 잘하고 있어. 조금 느려도 괜찮아."

틱낫한 스님의 책 '화'를 보면. "걸으면서 길을 만들어라.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문장을 메모해 두었다가,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읽는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 걸음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나를 다시 현재로 데려온다.

"물을 흘러가게 두면, 그 물이 길을 만든다." 이또한 요즘 자주 떠올리는 문장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읽은 구절을 내 식으로 바꾼 것이다. 억지로 흐름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 흐름 안에서 나를 맡길 때, 비로소 나답게 흐를 수 있다. 강물은 바위를 피해 돌아가지만, 결국 바다에 도착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서두르지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 그런 흐름으로.

매일 아침 오 분 글쓰기와 오 분 달리기를 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이 작은 습관이 내 삶을 바꾸고 있다는 것. 오 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오 분 동안 나는 온전히 나 자신과 함께한다. 세상의 소음과 요구를 잠시 내려놓고, 내 호흡과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습관에서 온다. 매일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그렇게 나는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

🌤 오늘의 명상

"서두르지 말라. 모든 것은 이미 그 자리에 있다."

오늘은 달리지 않아도 좋다. 대신 천천히 걸으며 숨을 느껴보자. 차 한 잔의 온도, 바람의 방향, 손끝에 닿는 공기의 질감.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완성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왔다. "나중에 행복해질 거야"라고 믿으며 지금의 불행을 참아왔다. 하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행복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이 호흡 속에, 이 걸음 속에, 이 고요함 속에.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 당신이 지금 느리게 가고 있다면, 그것도 충분하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고, 빠르게가 아니라 올바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잠시 쉬어간다. 그 모든 것이 다 괜찮다. 중요한 건 내 리듬을 찾는 것, 내 호흡을 존중하는 것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때로는 멈춰 서도 괜찮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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