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안개 속 영업을 깨부숴라_ Predictable Revenue

- 제목: 안개 속 영업을 깨부숴라
- 원제 : Predictable Revenue
- 부제: 불확실성 타파, 매출 혁신의 절대 공식 검색
- 저자: 아론 로스,마릴루 타일러
- 번역: FF
- 감수: 고상혁,양우진
- 출판: 스타트업북스
- 출간: 2025년 4월
안개 속 영업을 깨부숴라 - 실리콘밸리가 증명한 '숫자가 되는' 세일즈
"다음 분기엔 나아지겠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최근 신규 조직을 맡았다.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 막막했다.
세일즈를 20년 넘게 해 왔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항상 '운 좋은 한 방'에 기대어 살았다. 분기 말이 되면 팀원들과 "이번엔 좀 힘들었지만, 다음엔 괜찮을 거야"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게 전부였다. 왜 이번 분기는 좋았고, 왜 저번 분기는 나빴는지, 정작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경기 탓이었고 운이 나빴던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올린 포스트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Aaron Ross와 Marylou Tyler의 『Predictable Revenue』. 원제부터 범상치 않았다. '예측 가능한 매출'이라니. 영업에서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단어가 제목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어판이 있었다. 『안개 속 영업을 깨부숴라』. 번역서를 주문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1년에 나온 책인데, 왜 2024년이 되어서야 번역되었을까?
책을 받아 들고 읽기 시작하자 이해가 됐다. 번역자의 용기에 절로 감사함이 느껴졌다. 작년에 책 한 권을 번역했던 경험이 있는 나는 한 문장, 한 단어를 옮기는 수고로움 안다. 더군다나 이 책은 굉장히 니치 한 시장을 겨냥한다. B2B 세일즈, 그것도 SaaS나 IT 기반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들. 번역본이 팔릴까 걱정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이 좋은 책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역을 완성한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실리콘밸리가 '세일즈 바이블'이라 부르는 이유
이 책은 아마존과 굿리즈에서 300개가 넘는 리뷰를 받으며 평균 4.0점 가까운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한 독자는 "실리콘밸리의 세일즈 바이블"이라 부르며 비즈니스 책에 5점을 주는 일이 드문데 이 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다른 독자는 "계시와도 같았다. 읽고 나니 '이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되지만, 읽기 전에는 전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책의 핵심은 명확하다. 매출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면, 부족한 것은 영업사원의 열정이 아니라 과학적인 프로세스다. 세일즈포스는 이를 깨닫고 콜드콜 없이도 연간 1억 달러의 반복 매출을 추가로 창출했다 어떻게? 세 가지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였다.
첫째, 세일즈 팀의 전문화
저자 Aaron Ross는 "영업팀을 전문화해야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다. 전통적인 세일즈에서는 한 명의 영업사원이 잠재 고객을 찾고, 연락하고, 설득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고, 사후관리까지 모든 것을 다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Ross는 팀을 네 가지 역할로 나눴다: SDR(신규 고객 발굴), MRR(인바운드 리드 대응), AE(계약 체결), 그리고 Account Manager(고객 유지 및 확장). 각자가 자신의 전문 영역에만 집중하게 되자,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지난 20년간의 영업 인생을 되돌아봤다. 우리 팀원들은 아침에 콜드콜을 하다가, 오후엔 계약서를 검토하고, 저녁엔 기존 고객의 클레임을 처리했다. 하루 종일 바빴지만,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우리는 만능선수를 키우려다 평범한 선수들만 잔뜩 만들어낸 것이다.
둘째, Cold Calling 2.0 - 콜드콜의 장례식
책을 읽어 가다 보면 콜드콜의 도구인 전화기의 장례식에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콜드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Ross의 팀은 차가운 전화 대신 따뜻한 이메일을 사용했다. 그들의 미션은 단순했다: 세일즈포스 제품에 관심 없던 회사들로부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전화기를 붙들고 100통을 걸어 겨우 몇 명과 어설픈 대화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효율을 만들어 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뜨끔했다. 우리는 여전히 콜드콜을 하고 콜드메일을 보낸다. 얼마나 많은 전화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메일을 보냈는지를 확인하고 더 하라고 독려하고 있었다. 숫자를 채우는 것에만 집착했지, 그 숫자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제대로 추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바쁘게 일했지만, 똑똑하게 일하지는 않았다.
셋째, ICP와 측정 가능한 지표
예측 가능한 매출이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판매량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상적 고객 프로필(ICP)을 정밀하게 설정하고, 모든 것을 측정해야 한다. 월별로 생성된 적격 파이프라인의 숫자와 가치는 매출의 가장 중요한 선행 지표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CEO와 영업 리더들은 이 숫자를 모른다. 나도 몰랐다. 우리는 그저 "이번 달에 계약 몇 건 성사됐다"만 알았지, 앞으로 3개월 뒤, 6개월 뒤 파이프라인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독자가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비슷한 내용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핵심 내용은 하나인데 책이 너무 길다 생각할 수도 있고, 마치 세일즈포스 광고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책에서 이야기하는 세일즈 프로세스는 제품 가격대가 $1,000~$100,000 범위일 때 가장 효과적이며, 그보다 낮으면 비용이 과하고 높으면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은 프로세스, 툴링, 세일즈 이해도를 개선하고 싶은 세일즈 팀 리더에게 추천한다. 완벽한 책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원칙들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바탕으로 세일즈 부서를 구축하고 효과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이 책의 강점은 '읽는 재미'보다 '적용하는 즉시 달라지는 현장감'에 있다. 장마다 체크리스트, 이메일 템플릿, 지표 계산식이 수록돼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동시에 팀의 업무 흐름을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다.
창업자와 CEO에게는 투자자를 설득할 성장 로드맵을, 영업과 마케팅 리더들에게는 숫자로 증명되는 파이프라인 관리법을, 1인 비즈니스 오너에게는 혼자서도 실행 가능한 최소 영업 체계를, 전통 산업의 DX 추진자에게는 B2B 세일즈를 현대화할 실전 도구를 제공한다.
안개를 걷어내는 용기
책은 정직하고 논리적이다. 읽으며 동시에 생각하게 만들고, 빠르게 변화하도록 설득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20년 동안 안갯속을 헤매왔다는 걸 깨달았다. 때론 운 좋게 큰 계약을 따내며 "내 역량이 성장했다"라고 착각했고, 때론 실패하며 "시장이 안 좋아서"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달랐다. 나는 영업을 '예술'이라고 생각했지, '과학'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아직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쉽다. 세일즈에 고민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매출이 예측 불가능하다면, 당신의 영업팀이 분기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면, 당신이 "다음 분기엔 나아지겠지"라는 말을 또 하려 한다면 더욱더.
이 책은 안개를 걷어낼 용기를 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방향을 바꿔보기로 한다. 이제는 운에 기대지 않겠다. 프로세스를 믿겠다. 숫자를 측정하겠다. 팀을 전문화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갯속을 헤매는 것을 멈추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을 잊지 않겠다. 숫자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희생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평점: ★★★★☆ 4.5/5
추천 독자: B2B 세일즈 담당자, 스타트업 창업자, 영업/마케팅 리더, 전통 산업의 디지털 전환 담당자
핵심 키워드: 세일즈 전문화, Cold Calling 2.0, 예측 가능한 매출, ICP, 파이프라인 관리, B2B 세일즈 프로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