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1월 14일_일상의 미학, 꾸준함의 예술

SSODANIST 2025. 11. 1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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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여전히 일교차가 크다. 하지만 청명하여 좋다.

기온: 최저 2도, 최고 15도



🌅 되풀이 속의 고요한 아름다움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에는 묘한 성스러움이 있다.

아침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서 물을 마신다. 운동복을 입는다. 신발 끈을 묶는다. 문을 연다. 똑같은 순서, 똑같은 동작.

예전의 나였다면 지겨워했을 것이다. '왜 매일 똑같은 걸 해야 해?' 하지만 이제는 이 반복 속에 얼마나 깊은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안다. 

매일 오 분을 달리고, 오 분을 쓰는 일 — 처음엔 의지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내 안의 언어가 되었다.

몸의 이상과 공황장애로 모든 일상이 무너졌을 때, 나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었다.병원을 여러군데 옮ㅁ기면 검사를 해야했고 암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공황이 올지,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하지만 이 작은 루틴인 5분 달리기, 5분 글쓰기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들, 예측 가능한 것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나를 붙들었다. 

그 반복이 나를 살렸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지만, 매번 조금씩 다르게 들린다. 오늘의 호흡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의 발걸음은 오늘과 다르다. 같은 길을 걷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 평범함의 재발견

금요일 아침, 평소처럼 달렸다. 같은 코스, 같은 시간, 같은 속도.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아니, 하늘은 늘 그랬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오늘 처음 본 것일 뿐.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도 이 소리가 있었을까? 아니면 오늘 처음 들은 걸까?

길가의 꽃.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매일 이 길을 지나쳤는데, 오늘 처음 봤다.

그때 반복한다는 것은 둔해지는 게 아니라 깨어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이 길을 달릴 때는 너무 힘들어서 주변을 볼 수 없었다. 숨만 겨우 쉬었다. 하지만 매일 달리다 보니,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주변을 볼 수 있게 됐다. 느낄 수 있게 됐다.

꾸준함은 더 이상 '노력'의 이름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조화다. 어제의 호흡이 오늘의 발걸음 속에 이어지고, 내일의 마음이 오늘의 문장 속에 숨어 있다.

그 안에서 나는 '계속함'의 미학을 배운다. 그저 나타나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 순간과 순간 사이

오늘 오후, 동료의 퇴직 소식을 들었다.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순간 여러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도 어딘가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집에 와서 노트를 펼쳤다. 몇개월 전 첫 페이지를 봤다.

"오늘 처음 5분 달렸다. 숨이 차고 무서웠지만 해냈다."

그다음 페이지. "오늘도 달렸다. 어제보다 조금 덜 무서웠다."

한 장, 한 장 넘겼다. 몇개월간의 기록. 100일 넘게 쓴 글들. 대부분 짧고, 별 내용 없어 보이는 문장들 이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힘들었다."
"요즘 공황이 잦다. 하지만 달렸다."
"오늘은 잘 안 써진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쓴다."

큰 사건은 없었다. 극적인 순간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날들의 기록.

하지만 그 평범한 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을 '순간'으로 말한다. 승진하는 순간, 상을 받는 순간,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하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그 순간과 순간 사이, 아무 일도 없는 시간 속에 숨어 있다.

아침의 적막,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기록, 땀으로 적신 순간 — 그것들이 삶의 붓질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건 완성된 그림뿐이다. 4년간의 매일매일, 붓을 든 순간들은 보지 못한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작곡하는 데 몇 년이 걸렸을까? 매일 악보 앞에 앉아, 한 음 한 음 적어 내려간 시간들.

이제 나는 달리며 거리를 재지 않는다. 쓰면서 완벽을 찾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에 머무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매일의 부드러운 반복이 평범한 날들을 의미로 빚어낸다.


🕯 루틴이라는 철학

금요일 아침, 평소처럼 5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다. 하지만 몸이 무겁고, 마음이 우울했다. '오늘은 쉴까?'

침대에서 10분을 더 누워 있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그간 쌓아온 게 있는데, 오늘 하루 안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일어났다. 왜냐하면 나는오 늘 하루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늘 쉬면 내일도 쉬게 되고, 모레도 쉬게 된다. 그렇게 흐름이 끊어진다.

모든 루틴에는 하나의 철학이 있다. 나의 루틴은 인내를 가르치고, 자신을 믿는 법을 알려준다.

운동화를 신으며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는 거야.'

그것이 루틴의 철학이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

공황장애가 심했을 때, 나는 감정의 노예였다. 불안이 오면 모든 게 멈췄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루틴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불안해도 달릴 수 있다. 두려워도 쓸 수 있다. 감정은 있지만,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꾸준함은 화려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정직함'을 요구할 뿐이다.

완벽하게 할 필요 없다. 잘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나타나면 된다. 진심으로, 정직하게.


🎯 자유를 주는 구조

많은 친구들이 물었다. "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 하잖아. 답답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자유로워."

"무슨 말이야? 그게 어떻게 자유야?"

설명했다. "루틴이 있으니까 다른 걸 고민하지 않아도 돼.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뭐 하지?'라고 고민하지 않아.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데 쓸 수 있어."

친구는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루틴은 삶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고정시킨다. 혼란을 리듬으로, 불안을 연속성으로 바꾸어 준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일 같은 옷을 입었다. 회색이나 파란색 양복. 왜? 결정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 매일 수백 개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옷 고르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매일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었다. 마크 저커버그도 회색 티셔츠를 입는다.

그들이 창의적이지 않아서?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서 구조를 만들어, 중요한 것에 자유를 준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침 달리기, 5분 글쓰기는 협상할 수 없다. 자동이다. 그래서 나는 그 외의 시간에 진짜로 창의적일 수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내 존재를 다시 쓰는 행위다.


🌸 반복 속의 다름

어제도 오늘도 평소처럼 달렸다. 100번째쯤 되는 달리기.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왼쪽 무릎이 조금 아팠다. 호흡이 평소보다 얕았다. 마음이 산만했다.

이미 여러번을 달렸지만, 매번 다르다. 몸도 다르고, 날씨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 음악가를 생각해봐라. 피아니스트가 쇼팽 녹턴을 1,000번 연주했다고 하자. 매번 같은 음표, 같은 멜로디. 하지만 매번 다르다.

왜? 연주자가 다르니까. 오늘의 연주자는 어제의 연주자와 다르다. 조금 더 나이 들었고, 조금 다른 경험을 했고,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선승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명상한다. 같은 자세, 같은 호흡, 같은 만트라. 40년, 50년. 하지만 매번 다르다. 매번 새롭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중요한 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이지만 매번 다르다.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 같은 해지만 매번 다르다.

매일 숨을 쉬는 것. 같은 행위지만 매번 다르다.


🌙 소리 없는 힘

금요일 저녁, 한 주를 돌아본다.

이번 주에 무슨 일이 있었나? 특별한 건 없었다. 회의하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평범한 한 주.

하지만 주간 매일 아침 달렸다 그리고 매일 글을 썼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다.

블로그를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 7일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꾸준함은 결코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작은 행동으로, 조용히 힘을 쌓아간다.

근육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매일 운동하면 근육은 자란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매일 물을 주면 나무는 자란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매일 지나면 아이는 자란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예전보다 마음이 단단해졌음을, 몸이 나를 신뢰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불과 몇개월 전, 나는 공황 발작이 올까 봐 두려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지금? 매일 아침 달린다. 혼자서, 아무 두려움 없이.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한순간에? 아니다. 여러번의 작은 선택이 쌓여서.


🪶 헌신이라는 사랑

월요일 아침에는 늘 일어나기 싫었다.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는 것이 무거웠다.

하지만 일어났다. 달렸다. 썼다.

왜?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규율은 통제가 아니라, 헌신이다." 그 문장이 자꾸 되살아난다.

나는 달리기를 사랑한다.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어떤 날은 힘들고, 어떤 날은 지루하다. 하지만 사랑한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항상 잘 써지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막히고, 어떤 날은 쓰레기 같은 글만 나온다. 하지만 사랑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기분이 좋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기분이 나빠도 하는 것.

결혼한 부부를 보라. 매일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끼는가? 아니다. 어떤 날은 짜증나고, 어떤 날은 지겹다. 하지만 매일 선택한다. 함께 있기로, 돌보기로, 헌신하기로.

매일의 달리기와 짧은 글, 하루의 정리는 모두 '내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헌신'이다. 천천히, 그러나 진심으로.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 나를 위해 달린다. 나를 위해 쓴다.

자기 사랑이 이기적이라고? 아니다. 자기 사랑이 없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텅 비어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줄 수 있나?


☀️ 되돌아오는 예술

한 주의 끝에서 생각한다.

이번 주, 나는 꾸준함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틴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억지로 참는 것, 이를 악무는 것.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돌아오고 싶은 것, 함께 있고 싶은 것. 나는 매일 아침 달리기로 돌아온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진짜 나를. 거짓 없는 나를.

나는 매일 빈 페이지로 돌아온다. 완벽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되풀이한다는 건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고, 계속 돌아온다는 건 '내가 아끼고 있다'는 증거다.

엄마가 매일 밥을 하는 것. 반복이지만 사랑이다.

선생님이 매일 수업을 준비하는 것. 반복이지만 헌신이다.

정원사가 매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 반복이지만 돌봄이다.

나도 그렇다. 매일 달리고 쓰는 것. 반복이지만 자기 사랑이다.


🌾 질문의 전환

이제 나는 묻지 않는다. "얼마나 왔지?"

 3 개월? 100일? 그게 중요한가?

대신 이렇게 묻는다. "나는 아직 여기 있는가? 숨 쉬고, 느끼고, 시도하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완벽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빠르지 않지만, 멈추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짜 예술은 거기에 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성실한 '귀환' 속에.

화가가 매일 붓을 드는 것.
음악가가 매일 악기를 드는 것.
작가가 매일 펜을 드는 것.

예술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매일의 작업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도착이 아니라 여정이다.

나도 매일 예술을 한다. 삶이라는 예술을. 하루하루를 붓질로 삼아, 나라는 작품을 만들어간다.


🌙 내일을 향한 약속

오늘 밤, 한 주의 끝에서 나는 다시 중얼거린다.

"나는 내일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피곤해도, 바빠도. 나는 나타날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나타나는 것 자체가 승리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성공이니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다.

세상에, 나에게, 미래에 하는 약속. "나는 계속할 것이다."


🌅 당신에게

혹시 당신은 지금 포기하고 싶은가요?
반복이 지겹고, 변화가 보이지 않고, 의미를 잃은 것 같나요?

괜찮습니다.

그 반복 속에 예술이 있습니다.

화가는 수천 번의 붓질 끝에 걸작을 만듭니다.
음악가는 수만 번의 연습 끝에 명연주를 합니다.
당신도 매일의 작은 행동 끝에 걸작 같은 삶을 만들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나타나세요. 내일은 내일 생각하면 됩니다.

되풀이하세요. 사랑하는 것처럼.
돌아오세요. 집에 돌아오듯.
계속하세요. 숨 쉬듯.

당신의 꾸준함이 예술입니다.


오늘도 나는 나타났다.
내일도 나타날 것이다.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나타나는 것, 그것이 나의 예술이다.


오늘도, 우리는 아름답게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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