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2월 5일_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펼쳐든 '나'라는 책



거울 속의 나 - 배 나온 아저씨가 찾은 성공
날씨: 눈이오고 나니 더욱 푸르다. 그러나 춥다
기온: 최저 -9도, 최고 0도
오늘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가 멈칫했다.
거울 속에 배 나온 아저씨가 서 있었다.
흰머리는 뽑아낼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고, 이젠 '오빠' 소리보다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나이 마흔 후반이다.
배를 쓸어내리며 쓴웃음이 나온다.
"언제 이렇게 됐지?"
하지만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이 배, 이 흰머리, 이 주름살이 증거처럼 느껴진다.
내가 살아왔다는 증거...살아 있다는 증거
🌱 나는 달리는 척만 했다
돌이켜보면 참 열심히도 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리는 척'을 했던 것 같다.
20대에는 취업을 위해 달렸고, 30대에는 승진을 위해 달렸고, 40대에는...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렸다.
앞만 보고 뛰면 그 끝엔 번쩍이는 트로피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엔 공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그 순간들 응급실 침대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달리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구나.'
철학자 앨런 와츠는 말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춤을 추듯 살아야 한다. 춤에는 목적지가 없다."
나는 춤을 추지 않았다. 그저 도착점 없는 마라톤을 뛰고 있었다.
열심히 뛰었는데 왜 제자리인지, 땀은 왜 이렇게 많이 흘렸는지, 그리고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위험한 사람
얼마 전 이런 문장을 읽었다.
"평생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평생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
알고 있는 문장이지만 뒤통수가 서늘했다.
아, 내가 바로 그 '위험한 사람'이었구나.
20대와 30대의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딱 하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성공' 같은 거였을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통장 잔고를 늘리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믿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줄 알고 전전긍긍했다.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우리 가족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는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로.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다.
"당신의 비전은 오직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만 명확해진다. 밖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나는 계속 밖을 봤다. 남들의 성공을, 남들의 기준을, 남들의 시선을.
그리고 나 자신은 보지 않았다.
🏃♂️ 활동과 업적은 다르다
웃긴 건, 그렇게 살면서도 늘 불안했다는 거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밤마다 찾아왔지만, 그걸 무시하고 또 달렸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다.
활동(Activity)과 업적(Achievement)은 다르다.
나는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것 자체를 훈장처럼 여겼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을 흘렸지만,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바쁜 척하며 나를 혹사시키는 게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던 나의 미련함이 지금도 뼈아프다.
오늘 아침에도 5분을 뛰었다.
예전처럼 빠르게 뛰지는 못한다. 숨도 가쁘고, 세상 안픈적 없던 무릎도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방향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내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 성공의 정의를 다시 쓰다
그래서 요즘은 성공의 정의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다시 쓰려고 노력 중'이다. 30년 가까이 몸에 밴 습관을 버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해봤는데 남의 성공 방식으로는 나를 채울 수 없었다. 아니, 어려웠다.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비전이나 철학이 무슨 소용일까.
퇴근길에 아내와 나누는 맥주 한 잔에 웃을 수 있고, 주말에 소파에 누워 책한권 보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
누군가는 전 재산을 털어 산속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게 성공이라는데, 나라고 나만의 성공이 없을 리 없으니까.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깊이 살기 위해,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마주하기 위해 숲으로 갔다."
나는 숲으로 갈수는 없다. 대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배 나온 아저씨와 마주했다. 그가 말했다.
"너의 성공은 뭐야?"
나는 대답했다.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사는 거. 그게 내 성공이야."
이걸 50살이 다되서야 알게됬다.
🌙 오늘의 달리기, 오늘의 기록 - 자기 인정 목록
5분을 뛰고 돌아와 노트를 폈다.
어제 짐 론의 조언을 읽었다. 그는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것을 기록한다. 실패한 사람들은 해야 할 것만 기록한다."
나는 늘 'To-Do List'만 적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쑥스럽지만 '자기 인정 목록'을 적어봤다.
나의 자기 인정 목록
- 지난 15년간 큰 병 없이 가족을 지켰다
- 대출금 이자를 하루도 안 밀리고 꼬박꼬박 갚았다
- 수많은 상사의 히스테리를 잘 견뎌냈다
- 업계에서 나름의 자리를 만들고 이어나가고 있다
- 더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있다.
- 포기하지 않고 매일 일어났다
-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적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참 별거 아닌 것들인데, 한편으론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야, 너. 생각보다 잘하고 있었네. 10년 전보다 주름은 늘었지만,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네."
이 문장을 쓰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이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정상화다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의욕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애들처럼 무기력해졌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이게 무기력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달리던 사람이 이제 제 속도를 찾은 것뿐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거절 못 하고, 사람 좋은 척하느라 낭비했던 시간들을 걷어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프로답게 일하되,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회사 일은 문밖에 두고 들어오는 연습을 한다.
물론 아직도 자주 실패하지만.
비록 뱃살은 좀 나왔을지언정,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믿고 있다.
🌸 행복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행복은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찾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이순간 이라고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물론 완벽하게 그럴 수는 없다. 여전히 대출금은 갚아야 하고, 아이 학원비도 내야 하고, 아내의 작은 소원도 들어줘야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에서는 눈치가 좀 보여도 저녁 7시엔 퇴근하려 하고, 주말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하고,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갖는다.
그게 이기적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아프고 나니 내가 무너지면 가족도 무너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철학을 한다."
나도 그렇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사실 고백하자면, 아직도 불안하다
사실 고백하자면, 아직도 가끔 불안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특히 후배들이 승진하거나 옛 동기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물론 축하하는 마음은 잊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야, 그런데 너 행복하냐?"
그러면 답은 의외로 간단해진다.
"응, 예전보단 훨씬."
그것으로 충분하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좋은 삶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느릴지라도, 서툴지라도.
🌾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다
혹시 나처럼 마흔, 쉰의 고개를 넘으며 '내 인생 이대로 괜찮나?' 싶어 불안한 분이 계신다면 남의 성공 방식을 베낀 책은 이제 덮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참 많이도 읽었만 그 책은 당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치열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성공을 향해 걷고 있다.
다만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성공은 나쁜 선생님이다. 그것은 똑똑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실패할 수 없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반대로 말하면, 실패는 좋은 선생님이다.
나는 공황장애라는 실패를 통해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 오늘 저녁, 나만의 성공을 축하하며
요즘 술을 잘 안마시는데 오늘 저녁엔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아내와 아이는 치킨 시켜주고 혼자서 ...
누가 뭐래도 이게 내 방식의 성공이니까.
거울 속 배 나온 아저씨에게 건배를 하겠다.
"고생했어. 잘 버텼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시인 찰스 부코스키는 이렇게 썼다.
"진정한 용기는 새벽 3시에 술에 취해 혼자 있을 때, 그래도 계속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나는 용감하다.
배가 나왔어도, 흰머리가 늘었어도, 남들보다 느려도.
나는 계속 살기로 결심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나의 성공이다.
🌟 거울 속 나에게
거울 속의 나여.
배 나온 아저씨여.
흰머리 많은 중년이여.
피곤한 얼굴의 가장이여.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할지 모르지만,
네 기준으로 보면 잘하고 있어.
15년을 버텼어.
공황을 이겨냈어.
가족을 지켰어.
포기하지 않았어.
그것으로 충분해.
내일도 잘 부탁해.
우리 함께 가자.
느리지만 확실하게.
🌅 금요일 저녁, 나는 행복하다
금요일 저녁이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 피곤하지만 뿌듯하다.
오늘도 나는 살아냈다.
오늘도 나는 버텼다.
오늘도 나는 사랑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나는 나를 축하할 것이다.
삼겹살과 소주 한잔으로.
혼자만의 시간으로.
나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있다."
나는 나다.
배 나온 아저씨지만, 행복한 사람이다.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오늘 저녁, 나는 나에게 건배한다. "고생했어, 잘 버텼어."
📝 나의 성공 정의
성공은:
- 남들보다 빠른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
- 더 많이 가진 게 아니라, 덜 후회하는 것
- 높이 올라간 게 아니라, 깊이 살아가는 것
- 완벽한 게 아니라, 꾸준한 것
- 혼자 앞서가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것
오늘도, 나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