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2월 25일 (목요일)_100가지 용기이야기 #18_확신 없어도 시작하는 용기_의심하면서도 발을 내딛다

SSODANIST 2025. 12.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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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맑음 구름이 조금, 크리스마스의 잔잔함
기온: 최저 -11도, 최고 -1도


오늘 아침, 크리스마스인데 기대했던 눈은 오지 않았다. 창밖을 보니 그냥 회색빛 하늘뿐이었다. 사실 화이트 크리스 마스가 기다려는 지는데 눈이고 길도 질퍽하고 별로긴 하다. 아내와 아들은 학원에 가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목요일처럼,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보내기로 했다. 3주 전 시작한 이 글쓰기 챌린지의 18번째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갑자기 확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게 맞나?' '의미 있나?' '누가 읽기나 할까?' '100개까지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멈췄을 것이다. "확신이 서면 계속하지"라고 말하며 노트북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18일째다. 18일 동안 매일 썼는데도 여전히 확신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확신 없이. 의심하면서. '혹시 이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인다.


거실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봤다. 크리스마스라고 했지만 거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차들이 지나가고, 평범한 목요일 오전이었다. 창밖의 나무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나무들은 확신을 갖고 자라는가? '내가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겨울을 견디는가? 아니다. 그냥 자란다. 확신이 있든 없든, 의심이 들든 말든, 그냥 자란다. 나도 그렇게 써야 하는 것 같았다. 확신 없이도.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반 고흐의 편지집이었다. 몇 년 전에 샀지만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다. 펼쳐보니 1882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다. "나는 내 그림이 좋은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리지 않을 수 없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반 고흐도 확신이 없었구나. 그 위대한 화가도 평생 의심하며 그렸구나. 27세에 늦게 시작한 그림, 아버지는 "네가 화가? 돈도 안 되는데"라고 말했고, 친구들은 "취미로 하지, 왜 직업으로?"라고 했고, 고흐 자신도 편지에서 계속 의심했다. "나는 재능이 있을까? 아니면 시간 낭비일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게 맞나 싶어." "10년을 그려도 한 점도 못 팔면 어떡하지?"

 

책을 읽다가 멈췄다. 10년간 그린 900점의 그림 중 팔린 것은 단 1점. 동생 테오의 친구가 400프랑에 산 것뿐이고, 나머지 899점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세상은 그를 "재능 없는 미치광이"라고 불렀고, 고흐 자신도 1890년 편지에서 "나는 실패한 화가일까?"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해 7월, 37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50년 후 세상은 그의 그림을 발견했고, 지금 그의 그림 한 점은 1,000억 원이 넘는다. 확신 없이 그린 그림들이, 의심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인류의 보물이 됐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내 47년을 돌아봤다. 확신이 없어서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15년 전,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책을 샀다. 하지만 "확신이 서면 시작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미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시작하지 못했다. 10년 전, 운동을 시작하려고 헬스장 등록을 알아봤다. 하지만 "확신이 서면 시작하지. 내 몸이 변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며 미뤘고, 결국 6개월 전 다시 운동을 등록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매일 5분씩 뛰고 있다. 5년 전,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아이디도 만들었다. 하지만 "확신이 서면 시작하지. 내 글을 사람들이 읽을까?"라고 의심하며 한두개 쓰다가 미뤘고, 결국 6개월  전에야 확신 없이 시작했다. 지금은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18번째 글을 쓰고 있다.

 

깨달음이 왔다. 확신을 기다린 것들은 모두 하지 못했다. 확신 없이 시작한 것들은 지금 하고 있다. 확신은 시작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였다. 시작하기 전에는 절대 확신이 오지 않았고, 시작한 후에야 조금씩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평생 반대로 생각했다. 확신이 생기면 시작하겠다고. 그래서 평생 미뤘다. 무한 루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노트를 펼쳐 확신 없이 시작했어야 했는데 못한 것들을 적어봤다. 너무 많았다. 30대 초반, 직장을 옮기고 싶었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잘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못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옮겼어야 했다. 30대 중반,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박사과정을 하고 싶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어서 잘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지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갔어야 했다. 40대 초반, 작은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동료와 함께 준비도 했다.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마지막에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시도했어야 했다.

 

확신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지 세어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더 아픈 것은 지금도 여전히 확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을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온라인 강의를 만들어보고 싶지만 "사람들이 들을까?" 확신이 없어서 미루고, 책을 쓰고 싶지만 "출판이 될까?" 확신이 없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 오늘의 달리기 - 흐린 날의 의심

오후 2시, 달리기를 나갔다. 날씨가 흐려서 추웠다. 새벽에 못 뛰었으니 지금이라도 뛰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운동복을 입으니 의심이 들었다. '오늘 달릴 수 있을까? 이렇게 추운데? 크리스마스인데 왜 나 혼자 뛰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운동복을 입었으니 나갔다.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두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만 혼자 여기서 뛰고 있다. '이게 맞나?' 의심이 들었다.

 

첫 발을 내딛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1분, 2분, 3분. 뛰면서 생각했다. 3개월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이런 의심이 들었다.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확신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90일째 뛰고 있다.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서툴고, 느리고, 숨도 차다. 하지만 계속하고 있다. 확신 없이 시작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확신이 생기고 있다. '아, 나 할 수 있구나. 완벽하지 않지만 계속할 수 있구나.'

 

5분을 채우고 벤치에 앉았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확신은 시작하기 전에는 절대 오지 않는다. 시작한 후에,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생긴다. 그것도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70%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정도의 확신.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100% 확신을 기다리면 영원히 시작할 수 없다.


🔥 확신 없이 시작한 사람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다시 책을 펼쳤다. 줄리아 차일드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의 유명 요리연구가인 그녀도 37세까지 요리를 전혀 못 했다고 한다. 1948년 남편이 프랑스 대사관에 발령받아 파리로 가게 됐을 때, 심심해하던 그녀는 요리 학교 광고를 봤다. 르 꼬르동 블루. 하지만 확신이 전혀 없었다. "나? 요리? 37살에?" "평생 요리 안 해봤는데?" "계란 삶기도 실패하는데?" "프랑스어도 서툰데?" 모든 게 불확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등록했다. 확신 없이.

 

첫날은 최악이었다고 한다. 양파를 자르는 데 30분이 걸렸고, 소스를 태웠고, 생선 손질을 망쳤다.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Madame,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 줄리아가 대답했다.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배우고 싶어요." 이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확신은 없지만 배우고 싶다. 확신은 없지만 해보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6년간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매일 의심했다고 한다. '내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매일 요리했다. 그리고 1961년, 49세에 책을 출간했다.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대박이었다. 1963년에는 TV 요리 쇼를 시작했고, 미국 요리 역사를 바꿨다. 91세까지 요리 쇼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어요. 매번 '이게 맞나?' 생각했죠. 하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또 다른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읽었다. 일본의 세계적 작가인 그도 29세까지는 재즈바를 운영했고 글은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한다. 1979년 4월 어느 날, 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아,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거도 없고 확신도 없는 그냥 느낌. 집에 와서 펜과 종이를 샀다.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어로 쓰니 자신의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어로 먼저 쓰고 일본어로 번역하는 이상한 방법을 택했다. 확신 없는 방법이었다.

 

6개월 만에 첫 소설을 완성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출판사에 보냈다. 확신 없이. 그리고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적 작가다. '노르웨이의 숲'은 1,000만 부가 팔렸고, 노벨문학상 후보 단골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지금도 쓸 때마다 확신이 없어요. '이 문장이 맞나?' 매번 의심해요. 하지만 쓰죠."


🌙 오후의 생각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짧은 겨울 해가 벌써 기울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눈도 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교회에 갔고, 나는 혼자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달렸다.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47년을 살면서 확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20대에는 "나는 안다!"고 확신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지금은 "나는 모른다"고 인정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알고 있다. 경험이 쌓일수록 확신은 줄어들고 의심은 늘어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확신이 줄어들수록 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왜냐하면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말한 "70% 룰"을 떠올렸다. 70% 확신이면 시작하라는 것. 100% 확신을 기다리면 너무 늦고, 기회를 놓치고, 경쟁자가 먼저 간다. 70%면 충분하다. 나머지 30%는 하면서 채운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니 글쓰기를 시작할 때 확신은 50%도 안 됐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30%도 안 됐고, 모임에 참여할 때는 40%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 시작했고, 모두 계속하고 있다.

 

"실험 프레임"이라는 생각도 도움이 됐다. 이것을 시작이 아니라 실험으로 보는 것이다. 실험은 실패해도 된다. 실험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배움이다. "글쓰기를 시작할까?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글쓰기 실험을 해볼까? 뭘 배울까?"라고 생각하면 가벼워진다. 실패해도 괜찮다. 배우면 되니까.


☕️ 40대 후반의 후회들

저녁 6시, 가족들이 돌아왔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아내가 물었다. "오늘 뭐 했어요?" "책 읽고, 글 쓰고, 달리고... 생각 많이 했어." "무슨 생각?" "확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해서."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확신이 있어야만 했잖아요." 맞다. 나는 평생 확신을 추구했다. 확신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서재로 들어왔다. 노트에 40대를 돌아보며 적어봤다. 확신이 없어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 42세,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전혀 해본 적 없는 분야였다.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거절했다. 그 프로젝트는 다른 동료가 맡았고 대성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도전했어야 했다. 44세, 사내 공모전이 있었다.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지만 "당선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제출하지 못했다. 나중에 비슷한 아이디어가 당선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출했어야 했다. 45세, 강연 요청을 받았다. "잘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거절했다.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했어야 했다.

 

적다 보니 눈물이 났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놓쳤는지. 그리고 더 슬픈 것은 그 기회들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42세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44세의 나도, 45세의 나도. 하지만 지금의 나, 47세의 나는 여기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는 올 것이다. 이제는 안다. 확신이 없어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심이 들어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노트의 다음 페이지에 "반 고흐 기도문"이라고 이름 붙인 문장을 적었다. "나는 이게 맞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이것을 합니다. 의심하면서도. 확신 없이도. 그리고 내일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식이다. 확신을 기다리지 않고, 의심하면서도 시작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계속하는 것.


🎯 앞으로의 실천

다이어리를 펼쳐 앞으로 일주일간 할 것들을 적었다. 매일 확신 없이 하나씩 시도하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확신 없는 시도를 하나 해보고, 화요일에는 70% 확신으로 결정을 내리고, 수요일에는 새로운 실험을 하나 시작하고, 목요일에는 임시로라도 뭔가를 시작하고, 금요일에는 잘못됐다 싶으면 바꿀 준비를 하고, 주말에는 의심하면서도 계속하기. 그리고 매일 밤 확신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 확신 없이 한 것은 무엇인지, 확신은 몇 퍼센트였는지, 결과는 어땠는지, 무엇을 배웠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봤다. 다음 주에 시작할 것들. 온라인 강의 만들기 - 확신 60%, 하지만 시작한다. 새로운 분야 공부 - 확신 50%, 하지만 시작한다. 책 쓰기 계획 - 확신 40%, 하지만 시작한다. 모두 확신이 부족하다. 70%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괜찮다. 시작하면서 확신을 키워가면 된다. 반 고흐처럼, 줄리아 차일드처럼, 하루키처럼.


🌟 크리스마스 저녁의 다짐

밤 9시, 가족들이 잠들고 나 혼자 서재에 앉아 있다. 창밖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눈은 오지 않았다.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였다. 확신에 대해, 의심에 대해, 그리고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한 하루였다.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오늘의 다짐을 적는다. 오늘부터 나는 확신을 기다리지 않는다. 70%면 시작한다. 아니, 50%라도 시작한다. 의심하면서도 움직인다. 반 고흐처럼 확신 없이도 그리고, 줄리아 차일드처럼 확신 없어도 배우고, 하루키처럼 의심하면서도 쓴다.

 

47년을 돌아보니 확신을 기다리느라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바꾸면 된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는 확신이 없어도 시작하고, 의심이 들어도 계속하고, 불안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확신 없이도 시작하는 용기.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아침에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확신이 없어서 멈칫했지만, 결국 18번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후에 달리기를 나갈 때도 확신이 없었지만, 결국 5분을 뛰었다. 저녁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때도 확신이 없었지만, 결국 다음 주 실천 목록을 적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의 승리다.

 

침대에 누워 마지막 생각을 한다. 내일은 금요일. 19번째 용기를 쓸 것이다. 여전히 확신은 없을 것이다. '이게 맞나?' '계속할 수 있을까?'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확신 없이도 쓸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알기 때문이다. 확신은 시작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발을 내딛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것을.

반 고흐는 평생 확신이 없었지만 900점을 그렸다. 줄리아 차일드는 37세에 확신 없이 시작해서 91세까지 요리했다. 하루키는 29세에 근거 없는 느낌으로 시작해서 40년을 썼다. 나도 할 수 있다. 47세, 확신 없이 시작했지만 계속할 수 있다. 18일을 증명했다. 앞으로 82일도 증명할 것이다.

창밖을 마지막으로 본다. 여전히 눈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눈이 오든 안 오든, 크리스마스든 평일이든, 확신이 있든 없든, 나는 계속할 것이다. 매일 5분 뛰고, 매일 5분 쓰면서. 확신 없이도, 의심하면서도. 그것이 진짜 용기니까. 그것이 진짜 삶이니까.


내일도, 나는 쓸 것이다. 확신 없이. 왜냐하면 확신은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니까.

의심하면서도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모든 위대함의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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