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 생각

욕구와 결핍 그리고 선택과 회피가 인생을 바꾸는 법

SSODANIST 2026. 1. 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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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의 깨달음

새벽 두 시, 나는 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들을 무한히 넘기고 있었다. 아래 층에는 아내가 자고 있었고, 내일 아침이면 중학생 아들을 깨워야 했다.

"대체 나 뭐하는 거지?"

마흔일곱의 나이에, 아이의 아버지로, 그리고 한 회사의 임원으로 20년을 넘게 일해온 내가 새벽마다 의미 없는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문득 이건 휴식이 아니고 무언가로부터의 도망이라는 것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술자리에서 본 우리들의 민낯

얼마 전, 대학 동기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남자들의 술자리는 이상하게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처음엔 회사 이야기, 정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2차를 넘어가면 본심들이 나온다.

"요즘 골프에 미쳤어. 주말마다 나가." "나는 등산.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산 타러 가." "난 요새 주식... 퇴근하고 새벽까지 차트 보고 있어."

다들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즐거움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피곤함과 조급함만이 가득했다. 한 친구가 술에 취해 말했다. "사실... 집에 가기가 싫어서 그래. 집에 가면 할 말이 없거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피하고 싶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핍의 신호를 읽는 법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한동안 술에 빠져 있었다. 퇴근하고 해가 지면 회사 근처에서 한잔, 회식이라 한잔, 거래처랑 한잔, 그러다 하루 쉬는 날에는 집에서 한잔...소주 맥주, 위스키, 막걸리를 술과 전쟁을 하듯 순환하듯 목으로 넘겼다. 아내는 걱정했고, 결국 건강검진 결과는 나빠졌다.

"스트레스 받으면 마셔야야 풀려.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변명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에 또 술잔을 꽤나많이 비워내고 다 마시고 나서 느낀 감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봤다. 만족스러웠나? 아니었다. 취기가 오르고 몽롱해 졌지만 마음은 더 허전했다. "또 마셨다. 내일 아침엔 또 속이 안 좋겠지. 왜 나는 자꾸 이러지?" 자책만 남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스트레스 해소가이 아니었다. 이건 마음의 결핍이었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허탈함. 후배들에게 밀리는 것 같은 불안함. 집에서도 아이들과 점점 대화가 줄어드는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술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진짜 기분 좋게 마셨다면 "아, 술맛좋다" 하고 끝이다. 하지만 결핍에서 마시면 "왜 또 마셨지?" 하는 자책이 따라온다. 이 차이를 알게 되자,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도망

15년 전, 나는 첫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내 적성에 안 맞아. 더 큰 곳으로 가야겠어." 그럴듯한 이유였다. 부모님도, 아내도 이해해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도망이었다. 팀장에게 크게 혼났었다. 프로젝트에서 실수를 했고, 거래처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이라는 포장지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또 도망쳤다. 세 번째 이직이었다. 그때서야 내가 계속 회사를 옮기는 건 성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깨달았다. 

진짜 선택과 도망의 차이는 이렇다.

선택을 하면 책임감이 먼저 온다. 내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정했을 때(이건 진짜 선택이었다), 나는 두려웠지만 각오가 됐다. "연봉이 줄겠지. 안정성도 없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책임지고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도망칠 때는 해방감이 먼저 온다. "이제 이짓을 안해도 된다" "드디어 저 꼰대 팀장 얼굴 안 봐도 되겠네." "이제 저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어." 순간은 후련하다. 하지만 그 후련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인정의 힘

내 아버지는 평생 여러 일을 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 그게 답답해 보였다. "아버지는 왜 편안게 안사세요?" 한번은 그렇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도 젊었을 때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지. 사람이 미웠고, 일이 힘들었고. 근데 어느 날 깨달았어.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지. '나는 지금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구나.' 그 순간부터 달라지더라고." 당시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이해했다.

 

몇년전에도 나는 큰 프로젝트에서 실패했다. 6개월을 준비한 일이 물거품이 됐다. 나는 또 도망치고 싶었다. 휴직을 하고 싶었다.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책임져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마지막 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인정했다. "나는 지금 도망치고 싶어 하는구나. 실패가 무서워.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그래서 피하고 싶은 거야."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도망쳐도 돼. 하지만 도망치면 다음에 또 도망칠 거야. 이번엔 버텨보자. 어차피 망신은 당했어. 여기서 포기하면 그냥 실패자로 끝나지만, 다시 일어서면 배운 사람이 돼." 나는 남았다. 그리고 실패를 분석하고, 잘 마무리 했다.  더 중요한 건, 더는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준 메모장

"오늘부터 이걸 써보자."

6개월 전, 작은 메모장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한 일이랑, 그거 하고 난 기분. 딱 세 줄만 적어보기로 했다.

나는 분명 그때 귀찮아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다.

"오늘 쇼츠 3시간 봄. 기분: 시간 버린 것 같아서 찝찝함." "오늘 야식으로 치킨 먹음. 기분: 또 먹었다는 자책감." "오늘 아들과 30분 대화함. 기분: 뿌듯하고 따뜻함."

2주쯤 쓰니 패턴이 보였다. 내가 진짜 원해서 한 일들과, 그냥 시간을 때우려고 한 일들이 명확히 구분됐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채우고, 무엇이 나를 비우는지 알게 됐다.

유튜브는 나를 비웠다. 야식도 나를 비웠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대화는 나를 채웠다. 책 읽는 시간도 나를 채웠다. 주말 아침 조깅도 나를 채웠다.

그 메모장 덕분에 나는 달라졌다. 지금은 새벽에 유튜브 대신 책을 읽는다. 야식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마흔여덟, 다시 배우는 중

마흔일곱이라는 나이는 묘하다.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다. 아직 해볼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동시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는 나이다.

이 나이에 인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해서 하는 것과, 무언가를 피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하는 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려는 이 일은 내가 정말 원하는 건가, 아니면 뭔가를 피하려는 건가?" "지금 느끼는 이 욕구는 진짜 필요에서 온 건가, 아니면 마음의 빈자리에서 온 건가?"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걸 인정한다는 것이다. "아, 나 지금 도망치고 있네." 그 인정이 나를 멈추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건강도 회복 되는것 같고 회사 일도 예전만큼 스트레스가 아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환경이 달라진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곧 마흔여덟,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 딱 맞는 때인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를 알만큼 살았고, 아직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시간도 남았으니까.

오늘도 나는 작은 메모장에 세 줄을 적는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할 것이다. 이 작은 습관이, 내 인생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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