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냥 들이받을 수는 없으니까."

받아들이고, 때로는 들이받으며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냥 들이받을 수는 없으니까."
얼마 전 지인이 툭 던진 말이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참았던 것 같았다. 하소연을 듣다 보니 내가 더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렇게까지 참아야 하나요?"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 한마디였다.
받아들인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받아들이며 산다. 출근길 지하철의 밀어닥치는 사람들, 회의 시간에 퉁명스럽게 던져지는 상사의 말투, 아이가 흘리고 간 우유, 배우자의 무심한 한마디. 사실 이런 것들에 일일이 들이받았다가는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다.
들이받는다는 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정면으로 맞서려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때로는 관계가 깨지는 소리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참는다. 아니, 참는다기보다는 받아들인다.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고, 이건 싸울 만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쌓이고 쌓인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 내가 참고 있구나. 삭이고 있구나. 그러다가도 또 생각한다. 이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하지만 가끔은 들이받아야 할 때도 있다. 선을 넘는 일들이 있다. 나의 존엄을 건드리는 순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짓밟히는 순간. 그때는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그때는 온 힘을 다해 맞서야 한다. 부딪혀야 한다.
문제는 그 균형이다. 언제 받아들이고 언제 들이받을 것인가. 이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살아보며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몇 번 부딪쳐보고, 몇 번 참아보고, 그 결과를 감내하며 배운다.
매 순간 들이받으며 산다면 어떨까. 나도 지치고, 상대방도 상처받고, 관계는 삐걱거리고, 세상은 점점 날카로워질 것이다. 모든 것이 전쟁터가 되고, 모든 사람이 적이 된다. 그렇게 사는 건 너무 고달프다.
그렇다고 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내 목소리는 사라지고, 결국 나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사는 것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쯤 어디에선가 줄타기를 한다. 오늘은 참고, 내일은 말하고. 이번엔 넘어가고, 다음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한다. 참아야 할 때 들이받아서 후회하기도 하고, 들이받아야 할 때 참아서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완벽한 답은 없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려고 애쓸 뿐이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현명하게, 조금 더 용기 있게, 조금 더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냥 들이받을 수는 없으니까."
지인의 그 말에는 체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었다. 매번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 그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산다. 받아들이고, 때로는 들이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관계를 지켜내고,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 하루,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