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6년 1월 14일 (수요일)_100가지 용기이야기 #38_용서하는 용기_나 자신을, 그리고 남을

SSODANIST 2026. 1. 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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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다가 10년 전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대학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그중 한 명, 민수가 보였다. 한때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8년 전 크게 다퉜다.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해서 돈을 투자했는데 실패했고, 그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연락을 끊었다. 3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 하지만 더 아팠던 것은 배신감이었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그렇게 떠났다는 것.

 

그 후 8년간 그를 미워했다. 가끔 SNS에서 그의 소식을 봤다.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었고, 결혼도 했고, 행복해 보였다.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나한테 한 짓은 어쩔 거야? 사과도 없이 잘 살고 있네.' 미움은 8년간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무거운 짐처럼. 사진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 미움을 가지고 살 거지?'

 

점심시간에 동료와 대화하다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8년 전 친구 때문에 돈을 잃었는데 아직도 화가 나." 동료가 물었다. "용서는 안 했어?" "용서? 왜 내가 용서해야 해? 잘못한 건 그 친구인데."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게 아니야. 너를 위한 거야. 미움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너만 힘들어."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민수는 아마 나를 잊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8년간 그를 미워하며 살았다. 누가 더 고통받았을까?

 

저녁에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했다. 용서. 어려운 단어였다. '어떻게 용서해? 사과도 안 했는데. 돈도 안 갚았는데.' 하지만 동료 말이 맞았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한 것. 노트를 꺼내 편지를 썼다. 보낼 편지가 아니라 나를 위한 편지. "민수야, 8년 전 일을 용서한다. 네가 사과하지 않아도, 돈을 갚지 않아도. 나를 위해 용서한다. 이 미움을 더 이상 가지고 싶지 않아. 너도 행복하길 바란다." 쓰고 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조금 가벼워졌다. 용서하는 용기,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 데스몬드 투투 -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다"

저녁에 데스몬드 투투의 책 'The Book of Forgiving'을 펼쳤다. 남아프리카의 성공회 주교였던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이끌었다. 수십 년간 억압받고, 고문당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 그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투투는 말했다.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습니다."

 

책에서 그의 경험이 나왔다. 한 여성이 위원회에 왔다. 아들이 경찰에게 고문당해 죽었다. 그 경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여성은 울며 말했다. "어떻게 용서해요?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을. 후회도 안 하는 사람을." 투투가 물었다.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계속 미워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럼 당신은 평생 그 사람의 포로예요. 그가 당신의 삶을 계속 지배하는 거예요."

 

여성은 한참을 울다가 말했다. "용서하고 싶어요.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요." 투투가 답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나는 용서하기로 선택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나중에 따라옵니다."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용서하기로 선택합니다." 그날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변했다. 투투는 말했다. "그날 그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용서는 약함이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되 그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 용서하지 못했던 세월들

노트를 펼쳐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적어봤다. 민수 외에도 많았다. 20대 중반, 첫 직장 상사. 그는 나를 괴롭혔다. 회의에서 망신 주고, 야근을 시키고, 승진을 막았다. 그를 15년간 미워했다. 가끔 그 회사 소식을 듣고, 그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잘 안 됐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다. 15년간 그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썼다.

 

30대 초반, 아내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됐는데 커졌다.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아내는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용서하지 않았다. 일주일간 말을 안 했다. "용서해주면 내가 지는 거 같아서." 결국 아내가 더 많이 사과했고 나는 마지못해 "됐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용서는 안 했다. 그 기억을 가끔 꺼내 들어 아내를 탓했다.

 

40대 초반,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는 엄격했다. 어렸을 때 많이 맞았다. 공부 안 한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기억이 남았다. 아버지를 미워했다. 여전히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대화가 싸움이었다.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빨리 용서했으면 좋았을 텐데.'

모든 경우의 공통점이 있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아니라 내가 고통받았다는 것. 미움을 품고 있는 동안 상대는 그것을 모른 채 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미움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다.


🏃‍♂️ 오늘의 달리기 - 가벼워진 걸음

오늘 아침 달리기가 평소보다 가벼웠다. 어제 밤 민수에게 쓴 편지 때문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뛰면서 생각했다. '8년간 짊어진 짐을 내려놓으니 몸도 가벼워지네.' 5분을 뛰는 내내 편안했다. 숨도 덜 찼고, 다리도 덜 무거웠다. 마음이 가벼우니 몸도 가벼웠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봤다. 맑은 수요일 아침. "오늘은 용서의 날이야." 스스로에게 말했다. 민수를 용서했다. 그 상사도 용서하기로 했다. 15년이면 충분히 미워했다. 이제 놓아줄 때다. 아내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것도 오늘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 마음속으로 용서하기로 했다. '아버지도 최선이었을 거예요. 방법을 몰랐을 뿐.'


🔥 용서한 사람들

점심시간에 용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봤다. 이미 엘 위젤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치 수용소 생존자인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모두 가스실에서 죽었다. 그는 평생 그 기억과 살았다. 미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말했다. "나는 용서합니다. 잊지는 않지만 용서합니다. 미움을 계속 품고 있으면 그들이 다시 이긴 것입니다. 나를 인간 이하로 만든 것입니다. 나는 인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가 답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례로 루이스 잠페리니의 이야기를 읽었다. 2차 대전 때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고문당했다. 돌아온 후 PTSD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다. 수년간 악몽에 시달렸다. 고문했던 일본 간수를 꿈에서 죽이곤 했다. 미움이 그를 파괴하고 있었다.

 

1949년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에 갔다. 그날 설교 주제가 용서였다.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이 감옥에 갇힙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날 밤 그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 "나를 고문한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울면서 기도했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했다. 그날 밤 악몽이 사라졌다. 술도 끊었다.

1950년 일본을 방문해 수용소 간수들을 만났다. 그들을 안아줬다. "나는 당신들을 용서합니다." 간수들이 울었다. 2014년 9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용서에 대해 말했다. "용서는 나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 저녁의 용서

밤 9시, 아내를 거실로 불렀다. "왜?" "할 말이 있어. 10년 전에 우리 크게 싸웠던 거 기억나?" "응... 왜?" "그때 당신이 사과했는데 나는 제대로 용서 안 했어. 마지못해 '됐어'라고만 했지. 그리고 가끔 그 일을 꺼내서 당신을 탓했어. 미안해. 이제 진짜로 용서해. 아니, 용서한다는 말도 이상하네.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데."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오늘 용서에 대해 생각했거든.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더라. 그중에 당신도 있었어.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때 더 많이 사과해줘서." 아내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미안했어. 그때 너무 심한 말 했어." "아니야.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정말로 지난 일로 만들고 싶어."

 

우리는 한참을 안고 있었다. 10년 된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많이 달라졌어. 더 솔직해지고, 더 부드러워지고." "글쓰고 달리면서 배우는 것 같아. 매일 조금씩."


☕️ 40대 후반, 용서의 의미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20대에는 용서가 뭔지 몰랐다. 상처받으면 미워했다.

30대에는 용서를 약함으로 봤다. "용서해주면 내가 지는 거야."

40대 초반에는 용서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용서해?"

하지만 48세에 깨닫는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용서하기로 선택한다."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 용서하는 법

노트에 실천 방법을 정리했다.

첫째, "선택하기". "나는 용서하기로 선택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나중에 따라온다.

둘째, "나를 위해".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용서한다. 이 짐을 내려놓기 위해.

셋째, "편지 쓰기". 보내지 않아도 좋다. 용서한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넷째, "나 자신도". 남만 용서하지 말고 나 자신도 용서한다. 과거의 실수를, 잘못된 선택을.

다섯째, "과정으로". 한 번에 안 된다. 매일 조금씩.

여섯째, "사과 기다리지 않기". 상대가 사과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 있다.

일곱째, "대화". 가능하면 직접 만나 말한다. 불가능하면 마음속으로.


🎯 내일을 위한 준비

다이어리에 내일 계획을 적었다. 민수에게 메시지 보내기. "8년 전 일, 용서했어. 너도 잘 지내길 바란다." 간단하게. 부담 안 되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과거의 실수들, 용서해. 최선이었어."


🌟 오늘의 약속

눈을 감으며 다짐했다. 오늘부터 나는 용서한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데스몬드 투투처럼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믿는다. 이미 엘 위젤처럼 미움보다 인간으로 남는 것을 선택한다. 루이스 잠페리니처럼 용서로 자유로워진다.

 

용서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필요하다. 나를 위해. 8년, 15년, 20년간 짊어진 짐들을 내려놓는다. 가볍게 살기 위해. 자유롭게 살기 위해. 용서하는 용기,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내일도, 나는 용서할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진심으로. 용서하는 용기,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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