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 생각

아이의 첫 면도

SSODANIST 2026. 1. 1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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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서 마주한 시간, 아이의 첫 면도

 

토요일 오후, 도착한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집안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상자 속에서 꺼낸 것은 아이의 첫 면도기였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그 매끄럽고 차가운 기계 뭉치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이 가벼운 물건이 감당하기 힘든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일렁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가 자라는 뒷모습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햇살이 들기도 전에 허겁지겁 집을 나서고,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후에야 돌아와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나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주말조차 '내일'이라는 이름의 일들에 쫓기며 살다 보니, 아이의 시간은 저 몰래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걷던 사이, 어느덧 아이는 턱 끝에 거칠거칠한 자람의 흔적을 매단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아이와 나란히 섰다. 거울 속 풍경은 낯설고도 뭉클했다. 언제 이렇게 자란 걸까. 어깨를 나란히 맞댄 아이는 어느새 나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천천히 면도법을 일러주었다.

 

"이렇게 면도기를 켜고, 결을 따라 부드럽게... 너무 힘주지 말고 가볍게 밀어내는 거야."

 

내 손길을 따라 아이가 조심스럽게 기계를 움직였다. 거울 속 아이의 눈동자에는 처음 마주하는 세계에 대한 긴장감과 신기함, 그리고 이제 막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는 묘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그 벅찬 표정을 지켜보는데, 내 마음속에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날의 감정이 동시에 파고들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왜 가슴 한구석이 이토록 시린 걸까. 그것은 아마도 아이의 성장이 곧 나의 저물어감을 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뒤뚱거리던 첫걸음마를 기억한다. 보인 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던 첫 등교의 아침도 선명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아이의 첫 면도를 지켜보고 있다. 다음은 무엇일까요. 대학 입학, 첫 취직, 누군가와의 결합... 그 찬란한 이정표들 앞에서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늙고 쇠약해져 있겠지.

 

문득 나의 첫 면도를 가르쳐주시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의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으셨을까요=? 당신의 손을 떠나 어른의 세계로 편입되는 아들을 보며, 삶이라는 거대한 바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셨을까. 이렇게 삶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또 그 아들에게로 이어지며 묵묵히 반복되는 것인가 보다.

 

면도를 마친 아이가 매끄러워진 턱을 만지며 환하게 웃었다.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보는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잘했어"라는 한마디를 건네려 했지만, 갑자기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목이 메어 그저 함께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사소하고 짧은 의식이 내게는 얼마나 거대한 삶의 고백이었는지. 하지만 괜찮다. 이 아이도 언젠가 자신의 아이에게 면도를 가르쳐주는 날, 비로소 오늘 내가 느낀 이 묵직한 사랑의 무게를 깨닫게 될 테니까.

 

아이가 나간 뒤, 홀로 남은 욕실에서 거울 속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늘어난 흰머리와 깊게 파인 주름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했다. 이것이 삶이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순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이런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겹겹이 쌓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면도기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일을 좀 줄여야겠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만들어야겠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나는 계속 늙어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이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6년 1월 17일,

면도 후 모낭염에 걸렸다고 호들갑떨며 연고를 바르는 아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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