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7]'성공'은 TV에서만 보던 단어
성공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내게 '성공'이라는 단어는 TV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저녁 뉴스에서 나오는 대기업 회장들, 드라마 속 멋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광고 속 고급 아파트에 사는 가족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강원도 시골에서 나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는 이미 일터로 나가신 후였고, 어머니는 밭일 준비를 하고 계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보다는 뒷산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우리 동네에 없었다. 마을에서 가장 잘산다는 집도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한 생활을 하고, 비슷한 꿈을 꾸었다.
평범함 속의 평범한 하루
내 하루는 이랬다.
아침 7시,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된장찌개와 김치로 아침을 먹는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 친구들과 함께 시냇가를 따라 걸으며 학교에 간다.
수업 시간에는 딴생각이 많았다. 창밖 하늘을 보며 '저 구름은 어디로 가는 걸까?'라고 생각하거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를 보며 미소 짓곤 했다. 성적은 중간 정도. 특별히 잘하는 과목도, 못하는 과목도 없었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나갔다. 개울에서 꺽지를 잡고, 겨울에는 비료푸대로 눈썰매를 탔다.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밥을 먹고,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시골 아이의 하루였다.
TV 속 세상은 다른 나라 같았다
저녁 시간, 온 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봤다. 그때 나오는 드라마나 뉴스 속 세상은 내게는 외국 같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깔끔한 양복을 입고 넓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커다란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있었고, 전화벨이 울리면 "네, 김부장입니다"라고 말했다. 점심은 깨끗한 식당에서 양식을 먹었다.
뉴스에서는 '대기업 CEO', '벤처기업 성공사례', '부동산 재벌' 같은 말들이 나왔다. 그들은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인터뷰를 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멋진 집에 살았다.
"우와,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나는 TV 속 세상을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봤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저런 사람들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그저 TV 속에서만 나오는 가상의 인물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우리 동네의 '성공한' 사람들
그나마 우리 동네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이런 분들이었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씨 아저씨.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동네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분도 우리와 똑같은 집에 살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읍내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박씨 아주머니.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여전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셨다.
읍내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분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분들이 우리 동네에서는 '성공한 사람'의 전부였다. TV에서 보는 그런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공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래서인지 나에게 '성공'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항상 막막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상상이 안 됐다.
"의사요" "선생님이요" "대통령이요"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그런 직업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건지 잘 몰랐다. 그저 TV에서 본 것을 따라 말할 뿐이었다.
성공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평범함이 주는 안정감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학교에 가는 것,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뛰어노는 것,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편안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남들과 비교당하거나, 경쟁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내면 되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TV 속 사람들처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갈증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는 뭔가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거대한 꿈을 품고 살 수는 없을까? 수호지의 호걸들처럼 평범함을 벗어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시골의 평범한 일상으로.
"꿈은 꿈일 뿐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현실과 꿈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나를 바꾼 첫 번째 깨달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한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TV만 보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친구들이 게임에만 빠져있을 때, 나는 자연을 관찰하고 있었다. 모두가 '평범하게' 살아갈 때, 나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훗날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걸.
성공은 TV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성공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평범함을 벗어나는 첫걸음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바보스러움을 유지하라고.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지만,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질문하고,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탐험하고 있었다.
성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TV 속 성공은 결과였다. 진짜 성공은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