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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130일 완결)

2024년 9월 1일, 백수생활 43일째,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塞翁之馬)

by SSODANIST 202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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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국제신문

어제가 8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오늘은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날씨 이야기는 안해도 될 만큼 정상적이 되었다.

아직 낮 시간에는 뜨겁고 무덥지만

아직 여름이 끝난것이 아니니 당연히 더운 것이 정상이다.

일교차는 매일 0.5도에서 1도씨 커지고 있다.

이 서늘함이 좋고 설렌다.

 

8월 마지막 날의 메지지는 

선과 악 사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글이었고

9월 첫번째날의 메시지는 스스로 떴덧하고 강해져라였다.

8월은 몸과 마음을 정진하기 위한 달이었다면

9월은 강하고 당당한 나로 거듭나는 달이다.

봄, 여름을 잘 견디고 9월에 결실을 맺어

수확을 기다리는 농작물들처럼 

사람으로서도 꼭 속이 단단해져서

어디서든 쓰임이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9월 의 큰 주제 : 이대 사소(以大事小)

 

仁者 以大事小, 智者 以小事大 (인자 이대 사소, 지자 이소사대) 
맹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큰 자로서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도를 즐기는 것이고
작은 자로서 큰 자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존하며,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을 보존한다.
즉 정말 강한 사람은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 같다.

 

우리말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 않은가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사람은 커가면 자꾸 머리를 세우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지

겸손해야지 마음은 먹지만

들 돌아보면 실수 투성이었고

솟아오르는 고개를 어찌할 줄 모르고

쳐들어 올리며 거들먹 되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이제라도 하늘만 올려다보지 말고 땅을 잘 보면 살도록 하자

 

 

어제 정말 믿기 힘든 부고를 받았다.

생전 많이 가깝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전 둘이 잠시지만 소주를 한잔 마시적도 있고

먼발치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소식을 듣고 오다가다 마주치는 인연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왕래도 뜸하고 소원했으나

부고 소식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경영하던 회사의 대표였고

좋은 동료였으며, 가장이었고, 가족이었던

나이도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누군 가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묻지 못했다.

그냥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연히 듣게 되리라 생각한다.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참 인생 허무 한 것 같다.

열심히 살고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과실을 딸 수 있을 시기인데

다 피지 못하고 져버린 꽃이 너무도 안타깝다.

찬란했던 그대의 짧은 인생을 기억하며

부디 고통 없는 곳에서 영면들길 기원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올려다본 탓일까?

오늘은 하늘색이 오묘하다.

인생사 새옹지마 정말 모르겠다.

인생은 경험, 선택, 불확실성의 복잡한 과정이다.

아마도 가장 겸허한 깨달음은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계획하고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한

우리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늘 예측 불가능성의 장막에 가려진 미스터리와 같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때로는 두렵고 또 때로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답을 찾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기술은 인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철학은 존재의 의미와 씨름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추구하더라도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깨닫게 된다.

더 많이 배울수록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더 많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 것 같다.

우주의 광대함, 인간 정신의 복잡성, 영혼의 신비 등은

모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지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인생의 큰 질문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의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될까?

나에게 다가오는 과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인생의 확실성이 어렵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에는 심오한 아름다움도 있다.

그것은 삶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과 성장 

그리고 예상치 못한 기쁨이다.

누구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보다 진정한 삶의 방식을 접할 수 있다.

현재 순간에 더 잘 적응하게 되고

기대하거나 희망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순간에 감사하게 된다.

목적지에 집착하기보다는

여행을 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무도 앞을 알수 없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발걸음은 모험이 되고

배우고 성장하며 자신과 주변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불확실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우리의 공감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연결하고 공통된 인간성을 일깨워 준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도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의식에 흐름대로 살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심하게 통제에 대한 욕구를 버리고

현재에서 평화를 찾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그래야 하는 대로

정확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보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가장 심오한 통찰력과

가장 깊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이렇게 종종 알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다.

어떤 꿈을 꾸던 어떤 바람이 있다

그것들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모든 그대들의 인생에 건투를 빌며

오늘도 나는 그대들을 격하게 응원한다.

9월을 당신들의 시간이 되길 빈다.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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