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함이라는 적
사십 대 후반의 어느 가을 아침, 거울 앞에 선 나는 낯선 사람을 보았다. 백발이 늘어난 것도, 주름이 깊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 눈동자였다. 어디선가 빛이 꺼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등불처럼, 심지가 타들어가듯,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몸의 노쇠는 예견된 비극이다. 무릎은 낡은 경첩처럼 삐걱거리고, 계단은 어느새 산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견딜 만했다. 진짜 두려운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마음이 돌처럼 무거워지는 것. 아침 햇살이 창문을 두드려도, 봄꽃이 만발해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것. 무기력함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내 영혼의 문을 닫아버렸다. 젊은 날의 나는 불꽃이었다. 세상이 무대였고, 나는 주인공이었다. 밤하늘의 별들도 따올 수 있을..
2026. 2. 8.
살아진다, 견뎌진다_공황장애를 이겨내며
살아진다, 견뎌진다 그해 여름,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공황이라는 이름의 검은 파도가 아무런 예고 없이 밀려왔다.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심장은 제멋대로 요동쳤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공포.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나는 추웠다. 온몸이 떨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일인 줄 처음 알았다.어느 날,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한여름 볕을 올려다보았다. 저 푸르른 나뭇잎들. 지금은 저토록 싱그럽게 빛나지만, 언젠가는 노랗게 물들 것이고, 바스락거리며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릴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봄이 올 것이다. 계절은 멈추지 않는다. 그 단순한 진리가 그날 처음으로 내 가슴에 닿았다. 지금 이 고통도, 이 두려움도, 영원하지 않다. 여름이 가면 가..
2026.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