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고 생각하기

[북리뷰]우정이란 무엇인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by SSODANIST 2025. 11. 16.
728x90
반응형

 


제목: 우정이란 무엇인가

부제: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 박홍규의 사상사 1
저자: 박홍규

출판: 들녘

출간: 2025년 4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247190

 

우정이란 무엇인가 | 박홍규의 사상사 1 | 박홍규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사상가들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 우정론의 총체를 살피는 비판적 사유의 여정. 이 책이 말하는 우정은 자유이자 평등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마음을

www.aladin.co.kr


우정이란 무엇인가 — 외로움을 위한 변명이 아닌, 존엄을 향한 외침


"오, 나의 친구여, 친구는 없다네!"

참 묘한 위안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친구가 없는 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랄까?ㅋ 그런데 이 책의 첫머리에 우리가 "친구는 없다"는 말에 너무 쉽게 매혹되는 건 아닌가,  마치 그 말이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지 않느냐고 쓴다. 그렇다. 나는 그 말에 매혹되었던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현대 사회에서 그런 우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위안받고 싶었던 건 우정의 부재가 아니라, 우정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에 파묻혀 산 법학자가 말하는 우정의 역설

저자는 진보적 법학자로, 평생 자치와 자유, 자연이라는 아나키즘의 이념을 연구해온 학자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고백한다. "사실 나는 화려한 인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시골에 파묻혀 거의 혼자 살아온 사람이 우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을 먼저 꺼내놓는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설득력이다. 화려한 인맥을 가진 사람이 우정을 말한다면, 그건 자기자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용히 혼자 살아온 사람이 우정에 대해 말할 때, 그 말은 절실함으로 빛난다. 책이 말하는 우정은 친구 자랑이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철학이다.

그는 동서양 2천 년 우정론을 관통하는 본질 하나를 끌어낸다. 우정은 자유와 평등의 실천이며 진정한 우정은 편의의 피난처가 아니라, 자율적 개인들이 위계 없이 마주 서는 공간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우정과 우리의 관계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과 9권에서 우정을 쾌락을 위한 우정, 유익을 위한 우정, 그리고 덕을 주고받는 완전한 우정 세 가지로 분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정은 행복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었고, 우정을 통해 우리는 선행의 기회를 얻고 나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친구는 제2의 자아"라고 말했다. 진정한 친구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며, 그 거울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의 관계들을 떠올렸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 일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들. 그런데 나의 존엄을 인정하고 내가 그의 존엄을 인정하는, 그런 관계는 몇이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그냥 무섭다.


키케로가 말한 우정의 본질 — 필요가 아닌 본성

키케로는 『라일리우스 우정론』에서 이렇게 썼다.

"불멸의 신들께서 주신 것들 가운데,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인간에게 아마도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네."

 

그리고 이어진다.

"우정은 내가 보기에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지. 필요에서 유래하지 않네. 우정은 일종의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지를 고려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네."

 

키케로에게 친구는 "또 다른 나"였다. 그는 평생지기 아티쿠스에게 이 책을 헌정하면서, 우정의 가장 큰 유익은 "커다란 희망으로 미래를 밝히며 용기를 주고 의기를 북돋워" 불행을 견디고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우정을 '필요'로 계산하지 않는가. 이 사람과 친해지면 뭐가 좋을까, 저 사람은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우리는 관계를 투자처럼 계산하고, 손익분기점을 따진다. 저자가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런 건 우정이 아니라 거래인 것이다.


몽테뉴의 외침 — "왜냐하면 그는 그였고, 나는 나였기 때문에"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평생 단 한 명의 완전한 친구 에티엔 드 라 보에시를 가졌다. 둘은 보르도 고등법원 법관으로 일하며 1558년 만나 1563년 라 보에시가 페스트로 죽을 때까지 단 5년을 함께했다.

몽테뉴는 『에세』의 「우정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왜 그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였고, 나는 나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댈 수 없는 우정. 설명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연결. 몽테뉴에게 라 보에시와의 우정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그는 친구가 죽은 뒤 20여 년간 『에세』를 쓰면서 라 보에시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누군가가 내 삶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혹시 나는 그런 우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런 우정을 가질 용기조차 없는 건 아닐까.


혈연·지연·학연이라는 이름의 배신

저자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상은 한국 사회의 혈연·지연·학연이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끈끈한 유대'라고 미화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온갖 의무와 위계가 포장된 일종의 네트워크일 뿐이고 이것이 우정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같은 고향 출신이니까", "같은 학교 선후배니까", "친척이니까". 우리는 이런 이유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진짜 나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 출신", "누구의 후배", "누구의 조카"라는 꼬리표로만 존재하는가.

저자가 말하는 우정은 이런 껍데기를 모두 벗겨낸 관계다.

나는 당신의 존엄을 인정하고,
당신도 나의 존엄을 인정하며,
그 인정의 교환 속에서 자유로운 무엇이 생겨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 관계는 진짜 평등한가. 아니면 관습과 의무와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것인가. 솔직히 대부분은 후자가 많았다. 그리고 그게 슬펐다.


우정을 통한 작은 정치 — 지배 없는 공동체를 향하여

저자에게 우정은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선다. 우정은 일상의 정치적 실천이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스스로를 다스리고,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 함께 싸우는 장이다.

그래서 우정은 때로 서로를 위해 싸우고, 때로는 부당함과 맞서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지배와 계급이 관계 속에 스며드는 순간 우정은 무너진다. 반대로 평등과 존중이 자리를 잡는 곳에서 우정은 싹튼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거의 선언문에 가까운 외침으로 책을 맺는다.

"세계를 친구의 땅으로 만들자…
우정을 가로막는 껍데기는 모두 벗겨내자…
차별받는 이들—노동자, 가난한 사람들, 성소수자, 장애인—모두 우리의 친구가 되자."

처음엔 좀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우정 얘기하다가 갑자기 사회 변혁 얘기냐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우정이 평등이라면, 그 평등의 밖에 놓여야 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잃어버린 우정의 기술을 다시 배우기

고립이 깊어지고 개인주의가 단단해지며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는 시대. SNS로 '친구'는 수천 명이 되었지만, 정작 내 존엄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시대. 박홍규 선생은 이런 시대에 우정이 사치가 아니라 시민적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우정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지배 없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간다. 우정 속에서 평등을 연습할수록 삶에서도 평등을 되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질문을 하게된다.

나는 누구를 친구라고 부르는가?
그 관계는 정말 평등하고 자유로운가?
그 우정은 나를 더 자율적이고 용기 있는 삶으로 이끌고 있는가?

솔직히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부끄러웠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 나에게 던져진 질문

이 책은 독자에게 매뉴얼이 아니라 거울을 내민다. 인맥을 넓히는 기술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깊게 하라고 말한다. 키케로가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고 말했듯이, 진정한 우정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힘을 잃어버렸다. 아니, 버렸다. 우정보다 스펙이, 평등보다 위계가, 존엄보다 효율이 중요한 세상에서....

 

이 책은 우정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나는 진짜 친구가 있는가?
아니, 내가 누군가의 진짜 친구인가?
나는 누군가의 존엄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는가?

대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우정이 없다고 체념할 게 아니라, 우정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 

저자가 말한 '용기의 우정'은 결국 완벽한 친구를 찾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내보이는 용기. 상처받을지 모르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 차별과 위계에 맞서 평등을 연습하는 용기. 이런 게 아닐까?

 

책을 덮으며 오늘부터라도 누군가의 진짜 친구가 되어보겠다고, 또 껍데기를 벗기고, 평등하게 서서,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는 관계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어렵겠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정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이고, 우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