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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 생각

끝이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by SSODANIST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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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린다.

손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더듬거리고, 뇌는 천 가지 핑계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 '어제 늦게 잤어',

'내일부터 해도 되지 않을까'. 이불 속은 천국이고, 세상은 너무 차갑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늘 시작이 달콤한 것들에 열광한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만난 친구와의 술자리는 첫 잔부터 황홀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함, 쌓였던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기분. "한 잔만 더"를 세 번쯤 외치고 나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머리를 짓누르는 숙취와 함께 찾아오는 것은 후회뿐이다. '왜 그렇게 마셨을까', '오늘 미팅은 어떡하지'.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우리의 후회도 그렇다. 시작의 달콤함은 모두 비슷하지만, 끝의 씁쓸함은 제각각이다.

 

맛집 탐방도 마찬가지다. SNS에서 본 그 음식을 먹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앞에 놓인 음식을 보는 순간, 군침이 돈다. 첫 숟가락, 첫 젓가락은 감동 그 자체다. 사진도 찍고, 맛도 음미한다. 그런데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아까의 감동은 온데간데없고, 속은 더부룩하고, 지갑은 가벼워져 있다. 결국 남는 건 소화제를 찾는 자신의 모습이다.

 

여행은 또 어떤가.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설렘은 시작된다. 여행지를 검색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는 그 모든 시간이 행복하다. "떠나고 싶다"는 말 속에는 현실에서의 탈출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행에서 찾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어떤가. 비행기 안에서의 불편함, 낯선 곳에서의 피로, 그리고 돌아와서 마주하는 밀린 일상. 여행에서 돌아온 월요일 아침, 우리는 더 피곤해져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불과 얼마전까지 나는 '시작이 좋은 일'의 전문가였다. 금요일 밤의 달콤함, 주말 늦잠의 여유로움, 충동구매의 쾌감.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채우는 행복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즐거운 일들을 했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왜 매번 월요일 아침은 이렇게 무거울까.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중, 문득  '시작의 행복'만 쫓느라, '끝의 행복'을 잃어버렸다는 것 깨달았다. 

그날부터 매일 아침, 평소보다 5분 일찍 일어나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일주일은 지옥이었다. 알람 소리가 원망스러웠고,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마치 북극 탐험을 떠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5분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씻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이 하루 전체를 바꿨다.

회사에 5분 일찍 도착하면,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책상에 앉아 숨을 고르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할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저녁, 퇴근할 때의 기분이 달라진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라는 작은 성취감. 이것이 바로 '끝의 행복'이었다.

운동도 그렇게 시작했다. 헬스장 등록증을 세 번이나 만들고도 작심삼일로 끝났던 내가, 이번엔 달랐다. 목표를 바꿨다. '멋진 몸 만들기'가 아니라 '운동 후의 상쾌함 느끼기'. 운동을 시작할 때의 그 무거운 마음, 러닝머신에 올라서는 순간의 후회. "집에서 넷플릭스나 볼걸." 하지만 30분 후, 땀을 흘리고 샤워를 마친 뒤의 그 개운함.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더 당당해 보였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하루든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 '저녁에 뿌듯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인생이든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모두 '시작보다 끝이 좋은 일'들이다.

공부가 그렇다. 책상 앞에 앉는 순간은 고통이다. 유혹은 사방에 널려있고, 집중은 쉽게 흐트러진다. 하지만 문제를 풀어냈을 때, 새로운 지식을 깨우쳤을 때의 그 희열. 그것은 어떤 게임의 승리보다, 어떤 영화의 감동보다 깊고 오래간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두렵다. 상처받을까 봐, 더 틀어질까 봐 망설여진다. 하지만 용기 내어 진심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 순간. 그렇게 풀어낸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일도 그렇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부담감, 책임감은 무겁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밤을 새워가며,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프로젝트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 그것은 단순히 일을 끝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는 해냈다는 자신감, 그것이 나를 성장시킨다.

 

미국의 작가 짐 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쉬운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쉬운 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어려운 길은 점점 더 쉬워진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진실한가.

요즘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이불 밖이 추운 날도 있고, 알람을 무시하고 싶은 아침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5분의 불편함이 하루 전체의 여유를 만든다는 것을. 오전에 중요한 일을 끝내놓으면, 오후는 훨씬 가볍다. 퇴근 후에도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5분 일찍 도착하려 노력한다. 허겁지겁 뛰어가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여유롭게 먼저 도착해서 친구를 기다린다. 그 5분 동안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을 정돈한다. 그리고 친구가 왔을 때,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다. 만남의 끝은 언제나 따뜻하다.

 

독서도, 명상도,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했다. 시작은 늘 어렵다. "오늘은 바쁘니까", "기분이 안 나니까", "내일 하면 되지".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끝은 언제나 아름답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충만함, 명상 후의 고요함, 글 한 편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

 

이제 나는 묻는다. 내가 하려는 이 일은, 시작이 좋은 일인가, 끝이 좋은 일인가?

물론 시작이 좋은 일들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셔야 한다. 삶은 균형이니까. 다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행복은, 끝이 아름다운 일들을 꾸준히 해내는 데서 온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매일 파티를 즐기는 사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사람? 아니다. 그들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허함이 보인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피곤해도 책을 읽고, 바빠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들의 눈에는 빛이 있다.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빛.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나는 끝이 아름다운 일을 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괜찮다. 내일이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 5분만 일찍 일어나보자. 그 5분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끝은 아름답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 모두 끝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그래서 잠들 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그것이 진짜 성공이고, 진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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