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늘 "꿈을 좇으라", "열정을 태우라"고 외치곤 한다. 강의도 하고 강연도 하며 알만한 회사의 임원으로 지내는 그런 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내가 최고급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밤에는 30년 산 싱글 몰트 위스키를 음미하며 고뇌할 거라 상상들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대와는 조금 다른, 어쩌면 실망하실 수도 있는 고백을 해보려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며 산다. 좋아해야 한다고 믿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돌아볼 시간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는 이름 아래 감춰진 질문 하나. "나는 이걸 진짜 좋아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늦게야 던지기 시작했다.
첫째, 나는 그 흔한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전국의 카페 수가 10만 개에 육박하고,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400잔을 훌쩍 넘긴다고 하나. 세계 평균은 물론 아시아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이 수치 속에서, 난는 아직도 철저한 이방인이다.
"아니, 이 좋은 향과 문화를 왜 즐기지 않나요?"라고 묻는다면, 솔직한 내 대답은 이렇다. "믹스커피 대비, 그 압도적인 가성비의 차이를 도무지 모르겠다." 특히 얼음만 가득 채워진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볼 때면, 그 가격의 대부분이 "거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어떤 프랜차이즈의 말처럼 단순 커피가 아닌 공간을 임대하는 비용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맛"의 관점에서 저는 혀가 둔한 것인지 비싼 원두와 저렴한 원두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달달하고 직관적인 믹스커피 한 잔이 주는 확실한 행복이 더 크다.
그래서 시끌 벅적한 프랜차이즈 카페나 SNS인기 장소는 안예 찾지를 않는다. 그래도 가끔 어쩌다 조용한 카페에 가게 되면, 화려한 커피 메뉴 대신 투박한 곡물차나 사장님이 추천해주시는 잎차를 마신다. 허브티도 좋고, 곡물향이 은은한 차를 마시는 순간이 더 좋다. 남들이 "어라? 촌스럽게"라고 쳐다볼지라도, 내 혀가 느끼는 솔직한 맛의 즐거움을 타인의 시선과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비싼 위스키의 권위를 즐기지 않는다.
술을 좋하했고 주종을 가리지 않으니 다들 당연히 고급 위스키를 즐길것이라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고가의 위스키. "왜 저렴한 위스키를 마시냐"는 질문에 대한 내 답 역시 같다. "그 또한 가성비의 영역에서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만 원, 수백만 원짜리 위스키는 목 넘김이 비단결 같고, 오크통의 향이 예술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나에게 술은 미각 탐험이 아니라, 하루의 끝에서 나를 내려놓는 "이완"의 도구정도이다. 적당히 저렴한 위스키라도 내 입에 맞고,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다.
술병에 붙은 라벨의 가격이 내 기분의 품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잔을 기울이느냐다. 비싼 술을 마시며 불편한 대화를 나누느니, 싼 술을 마시며 진솔한 웃음을 나누는 쪽을 택하겠다.
셋째, 나는 "줄 서서 먹는 맛집"을 즐기지 않는다
요즘 SNS를 보면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2시간씩 웨이팅을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놀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다.
나에게 시간은 돈보다 훨씬 비싼 자산이다. 음식의 맛이 주는 쾌락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쾌락을 위해 내 인생의 2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선택이다. 남들이 다 먹어봤다는 그 도넛을 못 먹어봤다고 해서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이 줄을 서 있는 그 시간에, 한적한 공원을 걷거나 읽고 싶던 책을 한 장 더 읽는 것이 내 영혼을 더 배부르게 한다.
머리와 가슴 사이, 30cm의 거리
생각해보면 내가 즐기지 않는 것들은 여럿 있다. 호텔 조식은 분위기는 좋은데 가격만큼 만족스럽진 않고, 명품 브랜드는 멋지지만 내 일상을 바꾸진 못한다. 회식은 친밀해지기 위해서라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는 시간일 때도 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취미들도 막상 해보면 나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남긴 건 단순한 취향의 발견이 아니고 더 중요한 발견이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나를 지키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며 세상이 박수치는 기준 대신 내가 편안한 기준을 선택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따라주지 않았다. 생각과 감정, 기준과 욕망, 그 사이의 거리 30cm가 이렇게나 멀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의 유행이 아닌, 나만의 취향을 찾아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남들이 좋아하라고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려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끊임없이 당신을 다른 무언가로 만들려고 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은 가장 위대한 성취다."
우리는 너무 자주, 남들이 즐기는 것을 내가 즐기지 못할 때 불안해힌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내 취향이 촌스러운 건가?" 하지만 여러분, 취향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좋은 것"의 목록에서 과감하게 몇 가지를 지워보면 어떨까? 남들이 다 마시는 커피를 거부하고, 남들이 찬양하는 명품을 외면하고, 남들이 줄 서는 곳을 지나치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즐기지 않는 것들을 명확히 알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진짜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400잔의 커피보다 나만의 차 한 잔을, 비싼 위스키보다 편안한 술 한 잔을 선택하는 용기. 그 사소한 용기들이 모여,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나"를 만든다.
좋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닮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거리두기"일 때가 있다. 앞으로의 삶을 위한 선택은 어쩌면 이 질문 하나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즐기지 않기로 결심했는가?
그 이유는 정말 당신의 이유인가?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삶을 맑게 만드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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