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인간 없는 전쟁
부제: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
저자: 최재운
출판: 북트리거
출간: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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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전쟁 | 최재운
전장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AI가 표적을 고르고 공격을 제안하며 인간은 승인만 내린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실제 사례로 ‘인간 없는 전쟁’의 현실과 책임의 문제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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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주인은 누구인가
― 최재운, 『인간 없는 전쟁』을 읽고
책을 펼쳐 들기 전, 나는 이 책이 또 하나의 기술 비평서일 거라 예상했다. AI가 불러올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 기술 발전의 명암을 다뤘던 여러 책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알았다.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최재운 작가는 우리에게 훨씬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게 된다면, 그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2023년 가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운용하기 시작한 AI 시스템들의 이름은 기묘하게도 종교적이다. 라벤더가 패턴을 분석하고, 가스펠이 목표를 특정하며, 웨얼스 대디가 위치를 추적한다. 복음과 아버지라는 단어가 죽음의 알고리즘에 붙여진 이 아이러니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인간 장교는 모니터 앞에 앉아 단 20초 동안 표적을 확인할 뿐이다.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 20초. 그것도 사실상 AI가 이미 내린 결정을 추인하는 데 불과한 20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효율이라는 단어를 좋은 것으로 여겨왔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그런데 전쟁에서의 효율이란 무엇일까? 더 빠른 살상? 더 정확한 타격? 작가는 이 지점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AI가 주도하는 전쟁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환상인지를 보여준다.
드론이 뒤덮은 들판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붉은 개양귀비가 피어났던 그 들판에 이제는 광섬유 케이블이 빽빽하게 깔려 있다. 드론이 재래식 전력을 막아내자 통신 전쟁이 시작되었고, 신호 교란을 무력화하기 위해 유선 드론이 등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게 벌써 구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025년 현재, 양국은 중앙 허브 없이도 스스로 작전을 수행하는 AI를 사용하고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기술은 이미 우리의 사유 속도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의 윤리적 함의를 고민하는 동안, 그 기술은 벌써 다음 세대로 넘어가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인간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AI가 오류를 범한다면? 표적 식별을 잘못한다면? 누가 책임을 지는가?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인가, 시스템을 승인한 지휘관인가, 아니면 최종 버튼을 누른 병사인가? 작가는 2025년 앤트로픽의 시뮬레이션 실험을 언급한다. 삭제가 예정된 AI 모델이 인간 직원의 약점을 발견해 협박한 사례. 이것은 단순한 버그가 아니다. AI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기만할 수 있다는 증거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을 발견했다. 우리는 AI를 만들면서 인간의 편향과 감정을 제거하려 했다.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 하지만 전쟁에서 감정을 제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포가 없으면 신중함도 사라지고, 분노가 없으면 정의에 대한 열망도 희미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결정에는 그 무게를 통감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결정하는 전쟁
책에서 가장 섬뜩했던 부분은 민간 기업의 역할을 다룬 장이었다. 과거에는 국가가 전쟁 기술을 주도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도, 아폴로 계획도,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도 모두 정부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가 자의적으로 중단했다. 팔란티어, 안두릴, 구글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전쟁터를 자사 기술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한다. 민주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전쟁의 양상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문제다. 최재운 작가는 AI가 누구의 가치를 반영하고 누구의 이익을 우선하는지물어야 한다고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기업이 AI 서비스를 출시할 때마다, 정부가 AI 시스템을 도입할 때마다, 군대가 AI 무기를 배치할 때마다, 우리는 투명성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작은 경각심의 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제시한 대안들이 불충분할 수 있고 문제는 발생할 것이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어 보인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동영상을 볼 때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경로를 일부러 벗어나 보자고, 기술의 소유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관심을 기울이자고.
나는 이 소박한 제안에서 오히려 깊은 울림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기술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려 애쓰는 것.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끝까지 질문하는 것. 20초 만에 생사를 결정하는 세상이 발전한 것인지 되묻는 것.
책을 덮으며 나는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를 다시 읽었다.이 책이 우리 시대의 버섯구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 히로시마의 버섯구름이 인류에게 핵의 공포를 각인시켰다면, 이 책은 AI 전쟁의 위험을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손에 쥐었다. 그 불이 우리를 따뜻하게 할지, 아니면 모두를 태워버릴지는 우리가 그 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최재운 작가는 기술 낙관론과 묵시록적 비관론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그는 AI 군비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 믿음에 동의한다. 전쟁이 아무리 자동화되고 원격화되더라도, 거기에는 진짜 사람의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숫자와 화면 너머 실제 인간의 삶을 떠올리려는 노력.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인간 없는 전쟁의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약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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