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기술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어떻게 술을 끊고, 담배 한 개비 없이 스트레스를 버티나요?" 임원 생활을 제법 오래했고 나이도 꽤나 먹어가기에 이런 질문은 더 자주 따라왔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내가 거창한 비법이라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생각에 머문다.
'왜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 그렇게 지쳐버릴까?'
통제할 수 없는 바람 앞에서 지친 사람들
우리는 살면서 늘 바람을 멈추려 한다. 흩어지는 일들, 변덕스러운 사람들, 갑작스러운 변수들, 예기치 않은 사건들.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애쓰다가 결국 힘이 빠져버린다.
회사 동료가 갑자기 퇴사를 선언했을 때, 우리는 그를 붙잡으려 한다. 프로젝트가 엎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상황을 되돌리려고 발버둥 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떠났을 때, 그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바람을 멈출 방법은 없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우리의 판단, 충동, 욕망, 혐오뿐이다. 반면 손에 달려 있지 않은 것은 신체, 재산, 평판, 지위다."
다만 우리는 돛을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다잡기로 했다
나는 술을 끊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절제라는 말로 포장하면 멋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세상이 나를 흔드는 만큼, 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통제 가능한 것부터 다잡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억한다. 새벽 세 시, 술잔을 기울이던 그 순간들을. 다음 날 미팅에서 멍한 눈으로 앉아 있던 내 모습을. '그냥 오늘 하루만 버티면 돼'라고 매일 되뇌이던 그 시절을.
술을 마시면 잠시 괜찮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바람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일 뿐, 방향을 바꿔주진 못했다. 오히려 다음 날이면 더 깊은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바람을 잊으려고 하는 시도' 대신 내 돛을 조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은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뇌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고 한다. 바람을 피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더 큰 폭풍을 불러오는 셈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수행을 하거나, 거창한 해답을 찾아낸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억지로 기분을 바꾸려 하지 않고, 상황을 조작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조용히 책을 펼친다. 가볍게 신발을 신고, 천천히 걸어 나간다. 내 호흡이 다시 나의 박자를 찾을 때까지, 그저 시간을 건넨다.
요즘도 나는 매일 아침 작은 의식을 갖는다. 책상 앞에 앉아 5분간 글을 쓰고, 현관문을 나서 5분간 걷는다. '5분 쓰기, 5분 걷기'. 이 작은 10분이 때로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 된다.
가끔은 급한 연락이 오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즉시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도 나는 신발을 신는다. 단 10분이라도 걸었다. 그 짧은 산책이 끝났을 때, 머릿속에서 해야할 일들의 구조가 선명하게 잡혔다.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내 돛을 다시 잡은 순간이었다.
독서는 마음을 천천히 정리한다. 산책은 흐트러진 생각을 넓게 풀어준다. 이 작은 두 가지가, 어쩌면 가장 오래가는 회복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전원으로, 해변으로, 산으로 휴식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가장 좋은 휴식처는 자기 자신의 영혼 속이다."
회의적인 태도가 주는 균형감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독서와 산책만으로 인생이 순식간에 치유될 리 없다. 아마 어떤 독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해결될 스트레스였으면 벌써 해결됐습니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낭만적으로 보진 않는다.
빚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산책하세요'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가족의 병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책을 읽으세요'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 역시 지금도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밤에 잠들기 어려운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을 중심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 중심은 거창함에서 오지 않는다. 작은 루틴, 작은 호흡, 작은 고요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유에 대해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그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다."
바람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바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회복의 기술
앞으로의 시대는 더 빠르게 흔들릴 것이다. 직장은, 관계는, 삶은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바람에 노출되어 있다.
그럴수록 중요한 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사람이다.
하버드 의대의 회복탄력성 연구에 따르면,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거창한 성취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작고 일관된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런 작은 반복들이 폭풍 속에서도 그들을 지탱해주는 닻이 되어주었다.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돛을 다시 단단히 당기는 것.
당신의 돛은 무엇인가
그 돛은 삶의 속도이고, 내 마음의 방향이며,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의지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돛이 독서와 산책이었다.
누군가에겐 글쓰기일 수 있고, 음악일 수도, 고요한 방 한구석의 명상일 수도 있다. 한 직장인 친구는 매일 출근 전 30분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자기 전 감사일기 세 줄을 쓴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주말마다 동네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당신만의 중심이 되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사의 기분은 바꿀 수 없지만, 회의 전 심호흡 세 번은 할 수 있다. 경기 침체는 막을 수 없지만, 오늘 한 시간 공부는 할 수 있다. 타인의 평가는 통제할 수 없지만, 오늘 나의 최선은 다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바람이 아니다.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마무리하며: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바꾸려고 애쓰는 건 정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그 뒤에는 늘 같은 결론이 따라온다.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돛을 다룰 수 있다.
작가 안톤 체호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조금씩 만들어간다. 그리고 기적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매일의 작은 노력이 쌓인 결과다."
그러니 당신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것들부터 천천히 다뤄보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할 수 있다. 고요히 책 한 장을 넘기고, 짧은 길을 걸어보라. 혹은 당신만의 5분을 찾아보라.
그 작은 행동들이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신만의 중심이 되어줄 것이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하지만 우리에겐 돛이 있다. 그리고 그 돛을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한 번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조금씩, 당신의 방향을 찾아가면 된다.
"우리는 일어나는 일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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