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구름 조금, 토요일의 여유
기온: 최저 -3도, 최고 7도
오늘 오후 2시쯤, 소파에 앉아 무심코 핸드폰을 켰다. SNS를 열었는데 대학 동기의 글이 제일 위에 떠 있었다. 사진은 해외 어느 도시의 고급 호텔 로비였고,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사진도 있었다. 캡션에는 "또 다른 도전, 또 다른 성공 "이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뭐하고 있지?' 같은 나이, 47세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고 나는 집과 회사만 왔다 갔다 한다. 그는 성공이고 나는... 뭐지?
스크롤을 내렸다. 고등학교 후배는 창업에 성공해서 회사를 매각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대학 선배는 교수로 임용됐고 책도 출간했다는 글이 보였다. 전 직장 동료는 이직해서 연봉이 2배가 됐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모두가 나보다 앞서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성공한 것 같았다.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았다. 노트북을 탁 닫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예전 같았으면 이 기분을 며칠씩 끌고 갔을 것이다. 우울해하고, 자책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면서.
하지만 우연히 창밖을 봤다. 공원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느리게, 비틀거리며, 하지만 웃으며 타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다른 아이가 쌩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훨씬 빠르고, 훨씬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속도로 페달을 밟았다. 비틀거려도 괜찮다는 듯이, 느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갑자기 깨달았다. '아, 나도 저렇게 살면 되는구나. 내 속도로 가면 되는구나.'
다시 핸드폰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봤다. 동기의 글에 축하 댓글을 달았다. "축하해. 정말 대단하다.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어." 진심이었다. 시기가 아니라 진짜 축하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교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진짜 자유구나.
🌱 이청준 - "남의 문학 하지 말고 제 문학 하세요"
저녁을 먹고 서재로 들어가 이청준 선생의 산문집을 꺼냈다. 그는 1939년생으로 2008년에 세상을 떠난 한국 소설가다. 책을 읽다 보니 그는 평생 "느린 작가"였다고 한다. 1년에 단편 2-3편, 장편은 쓰는 데 몇 년씩 걸렸다. 동료 작가들은 달랐다. 어떤 작가는 1년에 장편 3권을 내고, 어떤 작가는 베스트셀러를 양산하고, 어떤 작가는 영화화와 드라마화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청준은 조용히, 천천히, 자기 속도로 썼다.
1990년대 어느 날, 문단 후배가 찾아와서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요즘 트렌드는 빠른 속도예요. 대중성이 중요하고요. 선생님도 좀 더..." 이청준이 웃으며 말했다. "남의 문학 하지 말고 제 문학 하세요." 후배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다른 작가는 다른 작가고, 나는 나요. 비교하면 불행해집니다." 후배가 또 물었다. "그럼 외롭지 않으세요? 유행에서 뒤처진 것 같고..." 이청준이 조용히 대답했다. "외롭지 않아요. 내 길을 가니까. 다른 사람 길 가면 그게 더 외로워요."
2008년 타계 직전까지 그는 자기 속도로 썼다. 베스트셀러를 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깊이를 만들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말했다. "이청준은 빠르게 가지 않았다. 그래서 깊이 갔다." 사후 평가는 이렇다. "그가 느리게 간 길이 한국 문학의 본류가 됐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빠른 것이 좋은 게 아니구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공이구나.
💪 비교의 독
밤 9시, 노트를 펼쳐 내 비교의 역사를 적어봤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말했다.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매일 비교한다. 특히 SNS 시대에는 더 심하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면 친구의 완벽한 아침 식사 사진이 있고, "나는 왜 편의점 김밥을 먹고 있지?"라고 생각한다. 점심에는 동료의 승진 소식을 보고 "나는 왜 아직도 이 자리에 있지?"라고 자책한다. 저녁에는 유명인의 운동 인증 사진을 보고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지..."라고 한탄한다. 밤에는 동기의 해외여행 사진을 보고 "나는 왜 여기 있지..."라고 우울해한다. 하루 종일 비교하고, 하루 종일 불행하다.
20대를 돌아봤다. 대학 동기들과 비교했다. "걔는 대기업인데 나는 중소기업", "걔는 연애하는데 나는 솔로", "걔는 차가 있는데 나는 대중교통". 결과는 항상 부족한 나였다. 30대는 직장 동료들과 비교했다. "걔는 승진했는데 나는 제자리", "걔는 집을 샀는데 나는 아직 전세", "걔는 둘째를 낳았는데 나는 겨우 첫째". 뭐 출산까지 비교할건 아니지만 ..결과는 항상 뒤처진 나였다. 40대는 SNS 친구들과 비교했다. "다들 성공했는데 나만...",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다들 멋진데 나만..." 결과는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을 때 치료사가 물었다. "왜 이렇게 불안하죠?"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아서요." "누구랑 비교하는데요?" "...모든 사람이요." 치료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당신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이 나를 깨웠다. 나는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비교할 필요가 없다.
🏃♂️ 오늘의 달리기 - 나만의 5분
새벽 공원에 나갔을 때 오늘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은 10km를 완주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30대로 보이는 여성은 가볍게 8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고, 6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우아하게 조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헐떡이며 5분을 뛰고 있었다. 비교하면 초라했다. 너무나 초라했다. 하지만 오늘은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다.
생각을 정리했다. 저 청년은 20대고, 나는 47세다. 저 여성은 10년 경력이고, 나는 겨우 3개월이다. 저 할아버지는 30년 경력이고, 나는 초보다.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상황이고, 다른 여정이다. 비교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나의 5분을 뛴다. 느려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내 속도니까.
5분을 마치고 벤치에 앉았는데 어제 만났던 그 할아버지가 옆에 앉으셨다. "열심히 하시네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 어르신처럼 못 뛰겠어요."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비교하지 마세요.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에요. 각자의 길이 있어요." 이틀 연속 할아버지에게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비교하지 말라고. 내 길을 가라고.
🔥 비교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꺼냈다. 1905년생으로 1997년에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지옥 같은 곳이었다. 매일 사람들이 죽었다. 죄수들은 서로 비교했다고 한다. "저 사람은 빵을 더 받았어", "저 사람은 일이 덜 힘들어", "저 사람은 아직 건강해". 비교가 절망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랭클은 달랐다. 비교를 멈췄다. "나는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내게 주어진 것에 의미를 찾자." 빵 한 조각을 받으면 "이것도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강제 노동을 하면 "살아있다는 증거다"고 생각했고, 고통을 느끼면 "견딜 수 있다는 증명이다"고 생각했다. 비교 대신 의미를 찾았다. 그래서 3년을 버텼다. 해방 후 그는 책을 썼다. "비교는 우리를 죽이지만, 의미는 우리를 살린다."
또 다른 책에서 이소룡 이야기를 읽었다. 1940년생으로 1973년에 요절한 무술가이자 배우다. 어릴 때 그는 왜소했다고 한다. 친구들보다 작고, 약했다. 비교하면 열등했다. 친구들이 말했다. "너는 작아서 안 돼." 이소룡은 대답했다. "작으면 빠르면 되지." 다른 무술가들은 전통 무술을 고집했다. "이게 정통이야", "이렇게 해야 해", "우리 스타일이 최고야". 하지만 이소룡은 비교하지 않았다. 모든 무술을 배웠다. 좋은 것은 가져오고, 나쁜 것은 버렸다. 자기만의 무술을 만들었다. 절권도(Jeet Kune Do).
그의 유명한 말이 있다. "Be Water, my friend." "물처럼 되라. 물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흐른다." 비교하지 않으니 자유로웠다. 전통 무술가들이 비판했다. "저건 무술이 아니야!" 이소룡은 대답했다. "나는 나의 무술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무술을 하라." 32세에 요절했지만 무술 역사를 바꿨다.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 저녁의 기록
밤 10시, 노트를 펼쳐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 "나는 나의 속도로 간다", "물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흐른다"고 적었다. 오늘 비교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어봤다. SNS 친구들의 성공을 보며 비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빠른 러너들을 보며 비교하고 싶었지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며 비교하고 싶었지만 나는 나라고 생각했다.
비교 대신 한 것들도 적어봤다. 내 성장 기록을 봤다. 3주 전과 지금을 비교했다. 3주 전에는 의미있는 글이 0개였는데 지금은 20개다. 3주 전에는 달리기 0분이었는데 지금은 5분씩 90일을 했다. 3주 전에는 용기가 0이었는데 지금은 20가지를 경험했다. 내 속도를 인정했다. 5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사랑하기로 했다. 서툴지만 내 목소리니까.
깨달음을 적었다. 다른 사람의 100과 내 10을 비교하지 말자. 내 어제의 9와 오늘의 10을 비교하자.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 40대 후반, 비교의 유혹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이가 들수록 비교는 더 잔인해진다. 20대에는 "아직 시간 있어"라고 위로할 수 있었지만, 40대에는 "이제 따라잡을 수 없어"라는 절망이 온다. 특히 동창회 같은 데서 더 심하다. "너 뭐해?" "회사 다녀"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이 "나도 회사. 임원이야"라고 말한다. 나는 임원이긴한데. 순간 위축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사람의 전체 삶은 모른다는 것을. 임원이지만 이혼했을 수도 있고, 돈은 많지만 건강을 잃었을 수도 있고, 성공했지만 불행할 수도 있다. SNS는 하이라이트만 보여준다. 실패는 올리지 않고, 슬픔은 숨기고, 고통은 감춘다. 비교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내 전체와 남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는 것.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자.
✨ 비교하지 않는 법
노트에 앞으로 실천할 방법들을 적었다.
첫 번째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말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자. 3주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글 0개에서 20개로, 달리기 0분에서 5분×90일로, 용기 0에서 20가지 경험으로 성장했다. 이것이 진짜 성장이다.
두 번째는 "감사 일기"다. 비교 대신 감사하자. 매일 오늘 감사한 것 3가지, 내가 가진 것 3가지, 잘한 것 3가지를 적으면 비교할 시간이 없다.
세 번째는 "SNS 디톡스"다. 일주일에 하루는 SNS를 완전히 끄자. 비교 재료를 아예 안 보면 평화로워진다.
네 번째는 "축하하기"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지 말고 축하하자. "저 사람도 고생했겠지", "나도 나대로 잘하고 있어", "각자의 길이 있어"라고 생각하자. 시기는 나를 아프게 하지만, 축하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다섯 번째는 "유니크니스 찾기"다. 나만의 것을 찾자. 남들은 빠르지만 나는 깊고, 남들은 많이 하지만 나는 제대로 하고, 남들은 화려하지만 나는 진실하다. 비교 불가능한 나를 발견하자.
🌾 비교의 종류
책상에 앉아 건강한 비교와 불건강한 비교를 정리했다. 불건강한 비교는 남의 결과와 내 과정을 비교하거나, 남의 최고와 내 최저를 비교하거나, 남의 하이라이트와 내 일상을 비교하거나, 남의 10년과 내 1년을 비교하는 것이다. 결과는 불행이다. 건강한 비교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거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거나, 지난달과 이번 달을 비교하거나,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것이다. 결과는 성장이다.
벤치마킹과 비교도 다르다. 벤치마킹은 "저 사람한테 배우자"는 것이고, 비교는 "저 사람보다 못 하네"라는 것이다. 벤치마킹은 성장으로 이끌지만, 비교는 열등감만 만든다.
🎯 이번 주 실천
다이어리에 다음 주 실천 계획을 적었다. 비교 멈추기 챌린지를 시작하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SNS를 보지 않기, 화요일에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기, 수요일에는 감사 일기 3가지 쓰기, 목요일에는 남의 성공을 축하하기, 금요일에는 나만의 강점 찾기, 주말에는 비교 없는 하루 보내기. 그리고 매일 밤 비교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 누구와 비교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비교 대신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를.
🌟 오늘의 약속
눈을 감으며 오늘의 다짐을 되뇌었다. 오늘부터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속도로 간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이청준 선생처럼 남의 문학 말고 제 문학을 하고, 빅터 프랭클처럼 비교 대신 의미를 찾고, 이소룡처럼 Be Water, 비교하지 않고 흐른다.
오늘 오후 창밖에서 본 아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느리게, 비틀거리며, 하지만 웃으며 자전거를 타던 모습. 옆에서 다른 아이가 빠르게 지나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속도로 페달을 밟던 모습. 나도 그렇게 살면 된다. 남들이 빠르게 가든 말든, 남들이 먼저 도착하든 말든, 나는 내 속도로 가면 된다.
오늘 아침 SNS에서 동기들의 성공을 보며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하지만 축하 댓글을 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시기하지 않고 축하하니 오히려 내가 자유로워졌다. 비교는 나를 가두지만, 축하는 나를 풀어준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3주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21번째 글을 쓸 것이다. 여전히 비교하고 싶은 유혹이 올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내일도, 나는 나일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교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진짜 자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