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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2월 29일 (월요일)_100가지 용기이야기 #22_작은 것에 감사하는 용기_평범한 것들의 기적

by SSODANIST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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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흐림, 오전에 비 월요일의 시작
기온: 최저 -3도, 최고 9도


오늘 아침 일찍 눈을 떴다. 6시.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눈을 뜰 수 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정말 당연한 일일까? 어제 밤에 잠들 때 오늘 아침에 깨어날 것이라고 누가 보장했을까?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수도꼭지를 틀자 깨끗한 물이 나왔다. '나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이것이 특권인 곳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주름이 늘었고, 흰머리가 보이고, 눈가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볼 수 있다.' 시력이 있다는 것, 거울이 있다는 것, 불을 켤 수 있다는 것.

 

거실로 나가니 아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밥, 국, 반찬 몇 가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다.' 배고프지 않은 아침, 먹을 것이 있는 아침, 함께 먹을 가족이 있는 아침. 아들이 반쯤 잠든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아침 먹기 싫어..."라고 투덜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빨리 먹어"라고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투덜거리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살아있다는 증거, 건강하다는 증거, 함께 있다는 증거.

 

회사로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생각했다. '나는 출근할 회사가 있다.' 실직의 공포 없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 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며 생각했다. '나는 손을 쓸 수 있다.' 10개의 손가락이 모두 있고, 움직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볼 수 있다.' 빛과 색을 구분하고, 거리를 가늠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오늘 하루가 시작되면서 깨달았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용기, 그것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마법이라는 것을.


🌱 헬렌 켈러 - "감사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고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들러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다시 펼쳤다. 1880년생으로 1968년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생후 19개월에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글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에세이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3일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 자주 생각합니다. 첫째 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눈에 담긴 친절함을, 인내를 보고 싶습니다."

 

책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합니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듣지 못합니다.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볼 수 있지만 정말 보고 있었을까? 아침에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들의 표정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을까? 회사 동료들의 웃음을 진짜로 느낀 적이 언제였을까?

 

헬렌 켈러는 또 이렇게 썼다. "감사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고이며, 기쁨과 결합된 감사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녀는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세상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었다. 볼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많이 봤고, 들을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깊이 들었고, 말할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많이 말했다. 왜일까? 작은 것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만질 수 있는 것에,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에, 배울 수 있는 것에, 살아있는 것에.


💪 감사의 부재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내 삶을 돌아봤다. 나는 언제부터 감사를 잃어버렸을까? 20대를 떠올렸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정말 감사했다. 월급을 받았을 때 손이 떨렸다. 작은 원룸이지만 내 방이 생겼을 때 행복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당연해졌다. 회사는 다녀야 하는 곳이 됐고, 월급은 늘 부족한 것이 됐고, 집은 더 큰 집과 비교되는 것이 됐다.

 

30대는 더 심했다. 결혼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진급했을 때 분명 감사했다. 하지만 곧 불평이 시작됐다. 아내의 잔소리가 싫었고, 아이가 밤에 울면 짜증났고, 진급해도 더 높은 자리가 탐났다. 감사는 순간이었고, 불만은 일상이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공황장애가 왔다. 그때야 깨달았다. 건강의 소중함을, 평범한 일상의 기적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하지만 회복되고 나니 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노트를 펼쳐 지난 일주일을 돌아봤다. 나는 무엇에 감사했을까? 솔직히 거의 없었다. 오히려 불평이 더 많았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불평했고, 화요일 회의가 길어져서 불평했고, 수요일 점심이 맛없어서 불평했고, 목요일 날씨가 추워서 불평했고, 금요일 주말이 짧다고 불평했다. 감사는 어디 갔을까? 가진 것은 보지 않고, 없는 것만 봤다. 이루어진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 아쉬워했다.


🏃‍♂️ 오늘의 달리기 - 달릴 수 있다는 것

새벽 공원을 뛰며 생각했다. '나는 달릴 수 있다.' 3개월 전만 해도 30초도 못 뛰었다. 지금은 5분을 뛴다. 늘 아쉬웠다. '왜 이렇게 느릴까?', '왜 이렇게 서툴까?', '왜 다른 사람들처럼 못할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달릴 수 있다.' 두 다리가 있고, 움직이고, 땅을 밟을 수 있다. 심장이 뛰고, 폐가 숨을 쉬고, 근육이 일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주변을 봤다. 새벽 7시.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나는 여기 있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할아버지도 보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원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샀다. 500원. '나는 커피를 살 수 있다.' 작은 돈이지만 있고,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며 걸었다. 따뜻했다. '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추운 아침이지만 따뜻한 커피가 있고, 두꺼운 옷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


🔥 작은 것에 감사한 사람들

오후에 책을 더 찾아봤다.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는 매일 작은 것에 감사했다고 한다. 빵 한 조각, 잠잘 자리, 살아있는 하루.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빵 한 조각에 감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도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잠잘 나무 침상에 감사했습니다. 땅바닥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아침 해가 뜨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밤을 넘기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또 다른 책에서 루이 자모레니의 이야기를 읽었다. 올림픽 육상선수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비행기가 추락해 47일간 태평양을 표류했고,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다. 그의 자서전 '언브로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비가 올 때마다 우리는 입을 벌렸습니다. 빗물 한 방울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새 한 마리가 뗏목 위에 앉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잡았습니다. 구름 한 점이 태양을 가려 그늘이 생기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녁 무렵,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았다. 닉 부이치치. 1982년생 호주 출신의 동기부여 강연자다. 그는 선천적으로 팔다리 없이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강연은 감사로 가득하다. "나는 발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넘어질 때 다칠 곳이 적으니까요." 청중이 웃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나는 항상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요. 나는 눈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귀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 저녁의 감사 목록

밤 9시, 노트를 펼쳐 오늘 하루 감사한 것들을 적었다. 아침에 눈을 뜬 것, 깨끗한 물을 마신 것, 따뜻한 아침 식사를 한 것, 출근할 회사가 있는 것,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것,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퇴근할 수 있는 것,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가족이 있는 것,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것. 적다 보니 끝이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보는 눈이 필요했다. 헬렌 켈러가 맞았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눈은 있지만 보지 못했다. 귀는 있지만 듣지 못했다. 손은 있지만 느끼지 못했다. 왜?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익숙해졌으니까. 감사하지 않았으니까.


☕️ 40대 후반, 감사의 재발견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47년을 살면서 언제 가장 감사했을까? 역설적이게도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 공황장애로 쓰러졌을 때,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했다. 숨 쉴 수 있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잠들 수 있는 것, 깨어날 수 있는 것.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건강해지자 또 잊어버렸다. 왜 우리는 잃어버려야 소중함을 아는 걸까? 왜 고통을 겪어야 감사를 배우는 걸까?

 

40대 후반이 되니 또 다른 감사가 생긴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감사. 젊을 때는 나이 드는 게 두려웠다. 주름, 흰머리, 체력 저하.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나이 들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창 중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가 둘이다. 그들은 47세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노트에 내일부터 실천할 방법들을 적었다.

 

첫 번째는 "아침 감사 3가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 가지에 감사하기. "눈을 떴다", "숨을 쉰다", "하루가 시작된다".

 

두 번째는 "식사 전 감사"다. 밥을 먹기 전 잠깐 멈추고 생각하기. 이 음식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했는지, 이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세 번째는 "감각 감사"다. 하루에 한 번씩 오감에 감사하기. 월요일은 눈으로 보는 것에, 화요일은 귀로 듣는 것에, 수요일은 코로 맡는 것에, 목요일은 입으로 맛보는 것에, 금요일은 손으로 만지는 것에.

 

네 번째는 "저녁 감사 일기"다. 매일 밤 오늘 하루 감사한 것 다섯 가지 적기.

 

다섯 번째는 "관계 감사"다.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이나 친구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에게 감사 표현하기.


🎯 내일을 위한 다짐

다이어리에 내일 실천할 것을 적었다. 아침에 눈 뜨면 "감사합니다" 세 번 말하기. 아침 식사 전 1분 감사 묵상. 출근길에 보이는 것 하나에 감사하기. 점심시간에 함께 먹는 사람에게 감사 표현하기. 퇴근길에 들리는 것 하나에 감사하기. 저녁 식사 전 가족에게 감사 말하기. 잠들기 전 감사 일기 쓰기.


🌟 오늘의 약속

눈을 감으며 오늘의 다짐을 되뇌었다. 오늘부터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한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선물이다. 헬렌 켈러처럼 볼 수 없어도 감사할 수 있다면, 볼 수 있는 나는 더 감사해야 한다. 빅터 프랭클처럼 수용소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자유로운 나는 더 감사해야 한다. 닉 부이치치처럼 팔다리 없이도 감사할 수 있다면, 온전한 나는 더 감사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았다. 눈을 뜬 것, 숨 쉰 것, 걸은 것, 먹은 것, 일한 것, 웃은 것, 가족을 본 것, 집에 돌아온 것. 모두가 기적이었다. 모두가 선물이었다. 모두가 감사할 일이었다. 내일도 나는 감사할 것이다. 작은 것에, 평범한 것에, 당연한 것에. 왜냐하면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모든 것이 은혜니까.


내일도, 나는 감사할 것이다.
눈 뜨는 것에, 숨 쉬는 것에, 살아있는 것에.
작은 것에 감사하는 용기, 그것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마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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