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가까워지면 대형마트마다 '차례상 세트'가 진열대를 채운다. 조율이시, 홍동백서의 순서를 두고 형제끼리 다투고, 어머니들은 사흘 전부터 부엌에서 허리를 구부린다. 그리고 차례가 끝나면 어김없이 어딘가에 '명절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는 매년 이 장면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이 의례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익숙함은 언제나 질문을 잠재운다.
차례(茶禮)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희(朱熹)가 편찬한 『가례(家禮)』에 닿는다. 고려 말, 성리학이 조선 건국의 이념적 토대로 수입되면서 이 예법 역시 함께 들어왔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가례』를 교과서 삼아 제사와 관혼상제의 형식을 정립했고, 그것이 수백 년에 걸쳐 민간으로 내려앉았다. 즉,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차례의 형식 상당 부분은 중세 중국의 귀족 예법이 조선이라는 토양을 거쳐 변형된 것이다. 한복을 입고 쌀밥을 올리지만, 그 골격은 이국의 예서(禮書)에서 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숭배의 심성 자체는 훨씬 오래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고 음식을 바치는 행위는 동서를 막론하고 보편적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부재한 존재와의 연결을 바라는 마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의례의 필요 — 이것들은 인간이라는 종의 오래된 본능에 가깝다. 차례는 그 본능 위에 유교라는 이념이 씌워진 혼합물이다. 때문에 차례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기억 본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현재의 형식을 영원한 진리로 고수하는 것은 역사를 오독하는 일이 된다.
김경일이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1999년에 출간되어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제목은 도발적이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유교적 위계질서와 체면 문화, 연공서열과 집단 동조의 압력 — 이것들이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차례는 그 연장선에 놓인다. 장남에게 집중되는 부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는 노동, 형식의 완벽함을 위해 치르는 정서적 비용. 이것들이 21세기 가족의 명절을 갈등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 의례는 지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고 싶다. 차례의 문제는 단순히 '유지냐 폐지냐'의 이분법으로 풀리지 않는다. 형식이 내용을 질식시킬 때, 문제는 의례 그 자체가 아니라 의례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차례상의 음식 수를 줄이고, 누가 차리든 함께 나누는 식사로 전환하고, 제사보다 대화를 중심에 놓는다면 — 그것은 전통의 파괴인가, 아니면 전통의 진화인가. 살아 있는 문화는 언제나 변해왔다. 오직 죽은 문화만이 박제된 형식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조상을 기억하는 일은 아름답다. 나를 있게 한 존재들을 떠올리고, 한 해의 변곡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문제는 그 기억이 특정 계층과 성별의 희생 위에서만 유지될 때다. 조상에 대한 예(禮)가 살아 있는 가족에 대한 상처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이미 공자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가 강조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논어』는 분명히 말한다. "예란 사치스럽기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장례는 형식적이기보다 차라리 진심으로 슬퍼해야 한다.(禮, 與其奢也寧儉, 喪, 與其易也寧戚)"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자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공자를 제대로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차례상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무게가 어디에 쏠려 있는지를 직시하는 용기다. 차례는 기억의 의례다. 기억은 살아 있는 자들이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 기억이 특정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가족 사이에 균열을 만들고, 소비 산업의 이윤으로 흘러든다면 — 우리는 이미 차례의 본질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명절이 끝나고 조용해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숨 속에 우리 시대의 답이 있다. 제도는 고칠 수 있다. 형식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지 못하면서 죽은 조상을 공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철학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2026년 1월 구정을 지내며.
ssod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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