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맑더니 갑자기 눈, 세상이 조용하다
기온: 최저 - 11도, 최고 1도
퇴근길, 회사 건물을 나서는 순간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사람들이 우산을 펴고 지나가고, 차들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하얀 점들이 쏟아진다.
47년을 살았지만, 첫눈을 이렇게 또렷하게 바라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아니, 언제부터 첫눈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살았을까.
🌱 첫눈은 늘 '처음'의 얼굴을 하고 온다
아이였을 때는 손바닥에 닿는 하얀 점 하나에도 가슴이 뛰었다.
"눈이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게 특별해졌다.
수업도, 학원도, 숙제도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 세상이 잠시 나를 위해 쉬어주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언제부턴가 첫눈은 느껴도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가장이 되면서부터 첫눈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생겼다.
'출근길 막히겠네.'
'타이어 체크해야 하나.'
'아이 학교 일찍 보내야겠다.'
기쁨보다 일정이 먼저 떠오르고, 설렘보다 도로 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다 오늘, 회사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언제부턴가 첫눈을 감각이 아닌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조금은 아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 47번째 첫눈이지만, 처음처럼
47번의 겨울을 살았다면, 47번의 첫눈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나는 첫눈은 몇 번이나 될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눈싸움하던 날. 스무 살, 첫 연애하던 사람과 걷던 겨울밤. 아이가 태어난 해의 첫눈.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던 해의 눈.
기억은 흐릿한데 감정은 이상하게 생생하다.
시인 나태주는 이렇게 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첫눈도 그렇다. 지나치면 그냥 눈이지만, 멈춰 서서 바라보면 특별해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멈춰 섰다.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한참을 하늘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봤을 것이다. '저 사람 왜 저래?' 하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만큼은 첫눈을 제대로 맞고 싶었다.
🏃♂️ 첫눈 속을 달리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평소라면 또 100만가지 핑계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운동화를 꺼냈다.
아내가 물었다. "지금 나가? 눈 오는데?"
"응, 오늘은 나가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가니 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한 1m 쯤 올기세였다.
공원은 조용했다. 평소 운동하는 사람들도 오늘은 없다.
첫 발을 내딛는다. 발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 사각, 사각.
이 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 걸까.
5분을 뛴다. 평소보다 천천히. 오늘은 속도가 아니라 느낌이 중요한 날이다.
흰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온다. 차갑지만 상쾌하다. 눈송이가 뺨에 닿고, 속눈썹에 걸리고, 입술에 녹는다.
첫눈 속을 달리는 건 어딘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다.
어린 시절로, 순수했던 그때로, 무거운 것들이 없던 그 시간으로.
🔥 첫눈을 기억하는 사람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렇게 썼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첫눈도 그렇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첫눈은 우리에게 말한다.
"잠시 멈춰. 숨 좀 쉬어. 돌아봐."
헤밍웨이는 파리 시절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그는 말했다.
"파리는 늘 그곳에 있다. 네가 어디에 있든."
첫눈도 그렇다. 매년 오지만, 매년 다르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첫눈 내리는 날 이렇게 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첫눈을 보며 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올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나?'
🌙 오늘의 달리기, 오늘의 기록
5분을 뛰어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시간 후 돌아과 책상에 앉는다.
숨이 가쁘고, 뺨이 차갑고, 손이 시리다. 하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노트를 꺼내 적는다. 펜을 쥔 손이 떨린다. 추워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가슴을 울려서.
"첫눈이 특별한 이유는 새하얗기 때문이 아니라, 비워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붙어 있던 무게, 피로, 걱정들을 잠시나마 덮어주고,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47번째 첫눈이지만, 이 첫눈은 지금의 나에게 처음이다."
이 문장을 쓰며 눈물이 날 것 같다.
왜일까. 첫눈이 주는 위로가 이렇게 큰지.
☕️ 내 나이의 첫눈은, 설렘보다도 삶이 주는 쉼표 같다
젊을 때 첫눈은 기대였다.
'오늘 눈 올까?'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보고, 설레며 기다렸다.
어른이 되어 첫눈은 잊혀졌다.
'눈이 왔구나.' 그저 지나가는 계절의 변화.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이 나이에 와서 첫눈은 쉼표가 되었다.
바쁘게 달려온 한 해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순간. 돌아보게 하는 시간.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말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쌓인다."
47년이 흘러간 게 아니라, 47년이 쌓였다. 그리고 그 위에 오늘의 첫눈이 내린다.
이 첫눈이 특별한 이유는,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더 많이 지쳤고, 더 많이 아파했고, 더 많이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많이 버텼고,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첫눈은 예전의 첫눈보다 더 깊다.
✨ 첫눈에게 배우는 것들
첫눈은 조용히 내린다.
요란하게 선포하지 않는다. 그냥 내린다. 알아차리는 사람만 알아차린다.
첫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더러운 것도, 지저분한 것도, 상처받은 것도. 하얗게 덮어 새롭게 만든다.
첫눈은 금방 녹는다.
영원하지 않다. 잠시뿐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오늘 첫눈을 보며 나는 배웠다.
삶도 그렇다는 것을.
조용히 흐르고,
상처를 덮어주고,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 오늘,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첫눈을 보셨나요?
바쁘게 지나치셨나요?
아니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셨나요?
손바닥에 받아보셨나요?
하늘을 올려다보셨나요?
내일은 늦습니다.
첫눈은 하루만 '첫눈'입니다.
내일부터는 그냥 눈입니다.
오늘만 특별합니다.
오늘만 처음입니다.
그러니 지금, 창문을 열어보세요.
밖으로 나가보세요.
하늘을 보세요.
첫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무게를 잠시 덜어주고,
당신의 피로를 잠시 덮어주고,
당신에게 쉼표를 주려고.
🌾 첫눈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어진다
젊을 땐 첫눈을 '기대'했고,
어른이 되어선 첫눈을 '잊었고',
이 나이에 와서는 첫눈을 '기록'하게 된다.
이 기록이 내년의 나에게 남아 또 다른 첫눈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의 나는 오늘의 이 기록을 읽으며 생각할 것이다.
'그때도 첫눈이 내렸구나.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인 김춘수는 이렇게 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첫눈도 그렇다.
내가 바라보기 전에는 그냥 날씨였다.
내가 멈춰 서기 전에는 그냥 하루였다.
내가 기록하기 전에는 그냥 지나가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첫눈을 불렀다.
그리고 첫눈은 내게 대답했다.
🎯 오늘의 첫눈이 내게 준 것
오늘의 첫눈은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 계절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의 하루도 함께 새로워졌다.
바쁘게 달려온 하루,
지쳐서 퇴근하던 나,
내일이 걱정이던 나.
첫눈은 그 모든 것을 잠시 멈춰 세웠다.
"쉬어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첫눈은 그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그 속삭임이 필요했다.
🌟 내일도 눈이 내릴까
내일도 눈이 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일의 눈은 '첫눈'이 아니다. 그냥 눈이다.
오늘만 특별하다. 오늘만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기록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에 감사한다.
2025년 12월 4일.
수요일.
첫눈이 내린 날.
퇴근길에 만난 하얀 세상.
잠시 멈춰 선 나.
그리고 첫눈 속을 달린 5분.
이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 오늘 밤, 나는 창문을 열 것이다
오늘 밤, 잠들기 전 나는 창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첫눈을 바라보려고 한다.
"고마워, 첫눈.
오늘 나를 멈춰 세워줘서.
오늘 나를 돌아보게 해줘서.
오늘 나에게 쉼표를 줘서."
그리고 내일 아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신발을 신을 것이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첫 발자국을 남기며.
시인 윤동주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 2025년 12월 4일.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었다.
📝 첫눈에게
내년에도 오겠지.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더 지쳤을까, 더 강해졌을까.
더 외로울까, 더 사랑하게 되었을까.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년에도 나는 너를 바라볼 것이다.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리고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안녕, 첫눈. 또 만났네."
🌅 내일도, 나는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의 첫눈이 준 쉼표를 가슴에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