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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뛰고 & 5분 글쓰고

매일 5분 뛰고 5분 글쓰기_2025년 12월 24일 (수요일)_100가지 용기이야기 #17_두려워도 시작하는 용기_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by SSODANIST 202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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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구름이 조금 있음, 크리스마스 이브의 설렘
기온: 최저 -3도, 최고 4도


오늘 저녁 6시, 조금 일찍 퇴근을 하다가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7층에 근무하는 직원이 함께 탔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얼마전에 결심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끔 온라인 미팅에서 만나는데 다음에는 먼저 인사하자." 나는 평생을 낯을 가리며 살았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고, 특히 회사에게는 더욱 그랬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지나쳤고,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타면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어색함을 견뎠고, 주차장에서 눈이 마주치면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사실 10년 전에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용기를 내서 인사를 먼저하기도 했고, 복도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정도는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했는데 못 들은 척 지나가버린 일이 있었고, 또 어느 날은 같은 층 직원에게 "날씨 좋네요"라고 말을 걸었는데 "네" 한마디만 하고 급하게 가버렸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말을 거는 게 부담스러운 거구나',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괜히 말 걸어서 이상한 사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쌓이면서, 점점 더 말문이 닫혔다.

 

그런데 얼마 전 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빠, 오늘 전학 온 친구가 있는데, 아무도 말을 안 걸어줘서 하루 종일 혼자 있었대. 나도 말 걸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 아들의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구나. 말 걸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날 밤 결심했다. 이제 부터는 먼저 말을 걸어보자. 이웃에게, 동료에게, 낯선 사람에게라도.

 

매일 새벽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몰래.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수고하세요". 간단한 말들인데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다. 목소리가 떨렸다. 표정이 어색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할 수 있을까? 또 무시당하는 거 아냐?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는 거 아냐?' 두려웠다. 오늘 아침에도 망설였다. '그냥 다음으로 미룰까? 좀 더 연습하고... 아니면 문자로 할까?' 하지만 이미 3주를 연습했다.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 안. 7층, 세 명. 침묵. 나는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멈췄다. '두렵지만 하기로 했으니까.' 손이 떨렸다. 입술이 말랐다. 목이 메었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메... 리..." 첫 음절이 나오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마치 변성기 소년처럼. 남편 분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당황했지만 다시 시도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번엔 조금 나았다. 여전히 떨렸지만.

동료가 동시에 환하게 웃었다. "아, 메리 크리스마스!" 한 쪽이 먼저 대답했다. "저희도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항상 바빠 보이셔서요." . "맞아요. 자주 미팅세서 만나면서도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요. 잘 부탁드려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을 때 다음에는 차하잔 하자면 먼저 말을 건낸다

 

완벽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떨렸고, 첫 마디는 실패했고, 땀이 났다. 하지만 해냈다. 두려웠지만 끝냈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했다. 두려워도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 넬슨 만델라 -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넬슨 만델라가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기 전날 밤, 1990년 2월 10일의 일이다. 당시 71세였던 만델라는 내일이면 27년 만에 감옥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동료 죄수가 물었다. "내일 석방이에요. 기쁘시죠?" 그런데 만델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두렵네." "뭐가요?" "모든 게. 27년 동안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어. 내가 그 세상에 맞을까?" 그의 두려움은 구체적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설할 수 있을까, 수백만 사람들의 기대를 채울 수 있을까,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을까, 백인과 흑인을 정말 화해시킬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만델라는 감옥 문을 나섰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그를 향했고, 수만 명의 군중이 환호했다. 그의 손은 떨렸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그는 걸어 나갔다. 연설을 했는데 목소리가 떨렸지만 끝까지 말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새로운 남아공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려웠지만 시작했던 것이다. 4년 후 그는 남아공의 대통령이 됐고, 그날도 또 두려웠다고 한다. '내가 정말 이 나라를 이끌 수 있을까?' 하지만 취임했고, 5년간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퇴임 연설에서 만델라는 말했다. "나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도 행동했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평생 두려웠다. 감옥에서도, 석방 후에도, 대통령이 되어서도. 하지만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만델라가 정의한 용기는 이것이었다.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 두려움과 용기의 관계

작가 애매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두렁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일상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용기의 공식은 단순하다. 용기는 두려움 더하기 행동이다. 두려움이 없으면 그냥 하는 것일 뿐이고, 두려움은 있지만 하지 않으면 비겁함이며, 두려움이 있는데도 하면 그것이 용기다.

 

나의 두려움 역사를 돌이켜보면, 10대 때는 두려움을 모르는 척했다. "나? 안 무서워!"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다만 인정하면 약해 보일 것 같아서 숨겼고, 그 결과 무모한 선택들을 많이 했다. 20대에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 안 할래." 고백도, 도전도, 변화도 모두 피했고, 그 결과 후회만 쌓였다. 30대에는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두렵지 않으면 하겠어"라고 말하며 영어 공부도, 이직도, 새로운 도전도 미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40대, 특히 공황장애를 겪은 이후 나는 비로소 배웠다.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아. 함께 가는 거야." 그리고 그 결과는 성장이었다. 두려워도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오늘의 달리기 - 추위와의 대면

새벽 공원에 나가려는데 온도계를 보니 영하 5도였다.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무서웠다. '오늘은 쉴까? 너무 추운데...' 두려움이 밀려왔다. 손이 얼어버릴 것 같았고, 귀가 떨어질 것 같았고, 길이 얼어서 넘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옷장을 열어 운동복을 꺼냈다. 두렵지만 나가기로 했으니까. 장갑을 끼고, 귀마개를 쓰고, 평소보다 두껍게 입고 밖으로 나갔다.

 

막상 나가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공기는 차갑지만 상쾌했고, 하늘은 맑아서 별이 보였다. 5분을 뛰는 동안 추운 건 처음 1분뿐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몸이 뜨거워졌다. 두려움은 상상 속에서 훨씬 더 컸던 것이다. 실제로 경험해보니 충분히 견딜 만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만약 두려움이 나를 막았다면, 이 아름다운 새벽을 놓쳤을 거야. 이 맑은 하늘도, 상쾌한 공기도, 달리고 난 후의 뿌듯함도.'


🔥 두려워도 시작한 사람들

2009년 영국 갓 탤런트 오디션장에서 수전 보일이라는 47세 여성이 대기실에서 떨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시골 마을에서 온 그녀는 평생 성가대에서만 노래했고 무대 경험이 전무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었던 그녀는 "나 같은 사람이... 여기서..."라고 중얼거리며 떨었다. 스태프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떨려요. 너무 무서워요." "나가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잠깐 망설였지만 일어섰다. "아니요. 하겠어요."

 

무대 위에 선 그녀 앞에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물었다. "꿈이 뭔가요?" "프로 가수요." 관객이 비웃었다. 47세 평범한 아줌마가 가수라니. 보일의 손은 떨렸지만 음악이 시작됐고,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나왔고, 떨렸지만 계속 불렀고, 무서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관객이 일어섰고, 심사위원은 입을 벌렸다. 노래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터졌다. 사이먼 코웰은 "This is extraordinary. 놀랍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영상은 유튜브에서 2억 뷰를 넘겼다. 그 후 앨범을 발매하고 세계 투어를 했지만,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두렵습니다. 지금도요. 하지만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어요. 용기는 두려움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하는 겁니다."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날 때도 두려웠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해서 끝에 가면 떨어진다고 믿었고, 바다 끝에는 괴물이 산다고 믿었다. 마젤란도 두려웠다. 출발 전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두렵다. 우리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야 한다." 선원들이 물었다. "선장님,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지. 하지만 가야 해." 3년간의 항해 동안 폭풍, 질병, 반란, 굶주림이 있었고, 마젤란 자신은 필리핀에서 사망했지만, 선원 18명이 돌아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젤란의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두려움은 매일 있었다. 하지만 매일 항해했다."


🌙 오늘의 달리기, 오늘의 기록

5분을 뛰고 돌아와 노트를 펼쳤다. 오늘의 두려움과 용기를 적으면서,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두렵지 않으면 용기가 아니라 일상이다", "두려움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라는 문장들을 되새겼다. 최근 두려웠지만 한 것들을 떠올렸다. 오늘 이웃에게 먼저 인사한 것, 이번 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것, 어제 모르는 것을 인정한 것, 오늘 새벽 추위 속에서도 달린 것.

 

하지만 아직도 두려워서 못 한 것들이 있다. 온라인에 내 글을 공개하는 것은 아직도 미루고 있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도 망설이고 있고, 새로운 일을 제안받았지만 확답을 못 하고 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두려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고 나면, 두려움이 조금씩 작아진다는 것을.


☕️ 40대 후반, 두려움과 함께 살기

젊을 때는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에는 "실패해도 괜찮아. 시간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은 오히려 늘어난다. 40대가 되니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새로운 두려움들도 생겼다. 건강이 악화될까봐, 일자리를 잃을까봐, 쓸모없어질까봐, 시대에 뒤처질까봐, 외로워질까봐,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을 더 잘 다루게 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왜냐하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무서웠는데, 해냈잖아"라고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다. 지혜도 생겼다. "두려움은 진짜가 아니라 상상인 경우가 많아"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이게 정말 중요한 두려움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게 됐다.

 

✨ 두려워도 시작하는 법

저녁을 먹고 나서 노트에 앞으로 어떻게 두려움을 다룰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몇 가지 방법을 적어봤다. 첫 번째는 "두려움 체크인"이라는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 그리고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막연하게 "실패가 두려워" 대신 "어떤 실패가 두려운가?", "거절이 두려워" 대신 "누구의 거절이 두려운가?", "창피해" 대신 "누구 앞에서 창피한가?", "고통스러워" 대신 "어떤 고통인가?"를 구체적으로 적다보면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번째는 스토아 철학의 "네거티브 비주얼라이제이션"이라는 기법이다. "최악의 시나리오"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적어보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지?"라고 또 적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이 두려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사했는데 무시당한다"였다. 그럼 어떻게 되지? "창피하겠지." 그럼 또 어떻게 되지? "...그게 다네." 대부분의 두려움은 실제로 따져보면 과장된 것이었다. 견딜 만한 일들이었다.

 

세 번째는 멜 로빈스의 "5초 룰"이다. 두려워질 때 5초를 세고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5, 4, 3, 2, 1, GO!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 엘리베이터에서도 이 방법을 썼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떠오르니까, 5초 안에 입을 열어버리는 것이다.

 

네 번째는 "작은 두려움"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큰 두려움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대신 작은 두려움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새 음식을 주문해보거나, 평소와 다른 길로 출근해보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새로운 운동을 시도해보는 것처럼. 작은 용기가 쌓이면 큰 용기의 근육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3주간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다섯 번째는 "두려움 일기"를 쓰는 것이다. 매일 밤 적는다. 오늘 무엇이 두려웠는가, 어떻게 대응했는가, 결과는 어땠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이렇게 기록하다보면 패턴이 보인다. "아, 나는 항상 시작하기 전에 두려워하지만, 막상 하고 나면 괜찮았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두려움의 종류

방에 누워 천장을 보며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연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두려움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생산적 두려움과 비생산적 두려움. 생산적 두려움은 성장을 위한 두려움이다. "이거 해본 적 없어. 무섭네. 하지만 배우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두려움, 행동을 촉진하는 두려움이다. 예를 들어 새 언어를 배우는 것,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 새 일을 시도하는 것,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 같은. 반면 비생산적 두려움은 회피를 위한 두려움이다. "이거 위험해. 절대 안 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두려움, 행동을 마비시키는 두려움이다. 변화 자체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 자체에 대한 두려움, 실패 자체에 대한 두려움 같은.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두려움이 나를 성장시키나, 축소시키나?" 성장시키는 두려움이라면 두려워도 GO, 축소시키는 두려움이라면 재평가가 필요하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생산적 두려움이었다. 두려웠지만 GO 했고, 이웃에게 먼저 말 거는 것도 생산적 두려움이었다. 두려웠지만 GO 했고,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생산적 두려움이었다. 두려웠지만 GO 했다. 하지만 타인과 비교하며 느끼는 두려움은 비생산적 두려움이었다. 의미 없으니까 STOP, 완벽주의로 인한 두려움도 비생산적 두려움이었다. 해로우니까 STOP.


🎯 이번 주 실천

다이어리를 꺼내 이번 주 실천 계획을 적었다. 매일 작은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하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새로운 음식을 주문해보고, 화요일에는 평소와 다른 길로 출근해보고, 수요일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해보고, 목요일에는 새로운 활동을 시도해보고, 금요일에는 온라인에 내 글을 공유해보고, 주말에는 조금 더 큰 두려움 하나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밤 두려움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의 두려움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대응했는지, 실제 결과는 어땠는지, 상상과 현실은 얼마나 달랐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 오늘의 약속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오늘의 다짐을 적었다. 오늘부터 나는 두려움을 핑계 삼지 않는다. 두렵더라도 시작한다.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만델라처럼 두려워도 걸어 나가고, 수전 보일처럼 떨려도 노래하고, 마젤란처럼 무서워도 항해한다.

 

창밖을 보니 눈이 올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눈. 아름답겠지. 오늘 저녁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메... 리..." 첫 음절이 갈라졌을 때의 당황스러움, 하지만 다시 시도했을 때의 안도감, 그리고 상대방의 따뜻한 반응. 완벽하지 않았지만 해냈다. 두려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3주 전 결심했던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47년을 낯을 가리며 살았던 사람이, 3주간의 연습 끝에, 오늘 드디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했고, 결국 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무시당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대신, 따뜻한 미소와 "다음에차한잔 하시죠"라는 초대까지 받았다.

 

두려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두려워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고 나면 두려움이 조금씩 작아진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행동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함께 걷는 것이다. 두려움을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일은 목요일. 18번째 용기를 쓸 것이다. 오늘처럼 두려워도, 오늘처럼 떨려도, 멈추지 않고. 만델라가 말했듯이 "나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도 행동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두려워도 걸어 나가고, 떨려도 말하고, 무서워도 시도하면서.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들의 미소였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말. "저희도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항상 바빠 보이셔서요." 알고 보니 그들도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먼저 용기를 냈고, 그 용기가 새로운 관계의 문을 열었다.

두려움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 두려움은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려움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안전지대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느낄 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구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구나. 좋은 신호야.'

 

47세. 인생의 거의 절반을 두려움에 갇혀 살았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서,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창피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두려움과 함께 걸으면 된다는 것을.

3주 전 첫 글을 쓸 때도 두려웠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썼다. 3개월 전 첫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두려웠다. '30초도 못 뛰는데 계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계속했다. 오늘 이웃에게 말을 걸 때도 두려웠다.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말했다. 매번 두려웠지만, 매번 해냈다. 그리고 매번 두려움은 상상보다 크지 않았고, 결과는 상상보다 좋았다.

 

내일도 두려워할 것이다. 모레도, 글피도. 평생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두려움은 이제 내 적이 아니라 동반자니까. 두려움은 이제 내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친구니까. 만델라의 말처럼, 나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두려워도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용기니까.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참 많이 성장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녕하세요"라는 세 단어를 말하는 데 3주가 걸렸지만, 그 3주는 헛되지 않았다. 그 세 단어가 새로운 관계의 문을 열었고, 아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나 자신에게도 자신감을 주었다. 작은 용기지만, 그 파급효과는 작지 않았다.

 

내일도 나는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동반자지 주인이 아니니까. 두려움은 신호등이 아니라 나침반이니까. 두려움이 "멈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성장이 있어"라고 알려주는 것이니까.


내일도, 나는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동반자지 주인이 아니니까.

두려워도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 모든 위대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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