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 이유 없이 낮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지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 구석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루틴인 산책을 하려고 15시가 넘어 밖으로 나섰는데 날씨가 제법 찼다.
기온은 10~12도 정도로 그리 춥지 않았는데
바람도 좀 불고 낮에 잠깐 비가 온 탓인지
체감 기온은 훨씬 더 춥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술 생각이 가장 많이 나고 술마시기 좋은 계절과 기온이
입김이 살짝 나며 쌀쌀해 지는 때였다.
시기적으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와
겨울을 나고 봄이 오기 직전의 날씨다.
쌀쌀해진 날씨에 술집을 찾아 들어가 따뜻한 국물을 시키고
안주나올때 까지 손을 호호불고 비비며
깡소주를 한잔 털어 넣으면 짜릿하게 넘어가는 알콜과
코로 풍겨오는 소주향 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기분 나빴던 일은 잊혀지고
피곤했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듯 에너지가 넘친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무릉도원을 이야기하고
억지인지 진실인지 모를 웃음이 가득하다
그것이 술의 매력이고 술자리를 다시 찾는 이유였다.
오늘 금주를 하고 처음으로 예전에 술이 생각나게 했던
그런 날씨를 경험했다.
비온 후 구름이 끼어 어두웠고
수분기 가득하여 축축한 기분
쌀쌀한 날씨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
허름한 술집 소주한병 팔팔끓는 김치찌게 한그릇 (여긴기는 상상)
완벽하게 낮 술과 박자가 맞는 순간이었으나
옷을 얇게 입어 추위가 느껴져서 언른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이를 먹었는지 추위를 갑자기 많이 타기 시작했다.
운동이 부족한 탓인가?
그리고 텀블러 가득 생수를 따라서 시워하게 원샷을 했다.
잠시 기분을 느낀 것만으로 충분했다.
잠시지만 자유를 느꼈고 위로가 되었고
주위가 환기가 되는 느낌이었다.
굳이 술을 안마셔도 이렇게라도 위로 할수 있으니 된 것이다.
잘 참고 있고 계속 참아 낼 것이다.
요즘은 술을 참는것뿐 아니라 더 참아 낼것이 많다.
더 정확히는 참아 내려고 하고 있다.
부당함을 참아야 하고 잘못됨을 참아야하고
화가나도 참아야하고 할말이 있지만 참아야한다.
불과 몇개월 전이였으면 벌써 멱살을 잡았을 수도 있고
뭔가를 집어 던지면 화를 냈을 수도 있고
육두문자 섞어 가면 이야기 했을 것이며
뒷일 생각 안하고 할말은 했을 것이다.
원래 불의를 보면 잘 참는 성격은 아닌데다
반골 기질이 심해서 뭔가 마음에 안드는 상황을
그냥 보고는 못넘어가는 성격인데 참아내고 있다.
할말 다하고, 화나는 것을 전부 표현하고
기분 나쁜 사람 모두를 잡고 싸우다 보면 일생이 참 허무하기도
또 한편으로 너무 다이나믹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표현은 하고 의견은 피력하되 딱 거기 까지만 하기로 했다
결국 감정은 없어지고 결과만 남기에 그 감정의 소비는
결국 나에게만 영향이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꾹 참아보기로 한것이다.
처음에는 참 힘들었는데 이것도 행동이 변하니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움직이는것 같다.
그냥 일어난 현상만을 보고 마음에 들지않고 내생각과 다르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계속 잘 참고 이해해보려고 한다.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다보니
내 기분을 못이기고 일을 그릇쳤던 기억이 많다.
좀 어른이 되야 하는데 아직도 철들려면 한참 남은것 같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거 보면 아주 철딱서니 없는것은 아닌것 같다.
술을 참아내고 있듯
이제 화도 열도 줄이고 참고 숨기고 살아보기로 한다.
술을 참아내고 있는데 무엇인들 못참을 것인가?
꼭 해야할 말이 있거나 표현해야 한다면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할 것이다.
감정은 접어두고 담백하게 이야기 할것이다.
젠틀하고 담백한 내가 상상이 잘 안되지만 변해보려고 한다.
금주가 3달이 가까워 오면서 뭐든 줄이고 안하고 멈추는 등
하지말아야할 것들을 안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고집만 자꾸 늘어난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는 않은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시간 12:50분
3달 전에는 술마시고 쓰러지듯 잠에 들 시간인데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쓰며
나름 도움이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기분이 좋다.
이제 하나 변하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이 변해서 좋은 사람으로 필요한 사람으로
도움이 되는 구성원으로 살아내고 싶다.
금주는 여전히 이상무 이며
좋은 변화에 대한 도전은 지속 시도중이다.
다행이 저항이 없어 기분좋게 매일을 보내고 있다.
어제 하루도 잘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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