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반,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깼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땀이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목이 말라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선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아침 운동을 가려고 했는데. 트레드밀을 뛰기엔 아래층에 미안한 시간이고, 밖으로 나가 걷기엔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체육관이 문을 열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뜬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변명하려다 멈췄다. 아니, 저녁에 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7시에 집을 나가 9시쯤 돌아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덤벨을 들었다. 숨이 차오르고 팔이 떨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좋았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술을 끊은 지 일주일째다. 그 좋아하던 술을. 저녁마다 기다려지던 첫 잔의 톡 쏘는 느낌, 두 번째 잔부터 풀리던 어깨의 긴장, 세 번째 잔 이후엔 잊혀지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대신 그토록 싫어하던 바벨을 들고 있고, 걷기만 하던 다리는 점차 빨라져 이제 슬로우 조깅을 즐기고 있다.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정직하다. 금단 증상이 왔다. 손떨림, 식은땀, 불면, 불안, 초조. 원래 가지고 있던 증상들이 조금 더 심해진 정도라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새벽처럼 식은땀에 젖어 깰 때면 무섭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경련, 환각, 진전섬망(알콜성 섬망 증세)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술을 물처럼 마셨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생명을 걸고 도망치고 있었던 거다. 무엇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네 명의 중년 교사들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일 때 인간은 가장 창의적이고 행복하다"는 가설을 실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들은 일상의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 마시며 수업했고, 잊고 있던 열정과 유머를 되찾았다. 학생들은 다시 그들의 수업에 집중했고, 가정에선 웃음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경계는 무너졌다. 조금의 취함은 적당한 취함이 되었고, 적당한 취함은 만취가 되었다. 실험은 삶을 바꾸는 위험한 도박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그들의 실험이 부러웠다. 동경했다. 술이 그들에게 잠시나마 잃어버린 생의 감각을 되찾게 해줬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게 변해오지 않았을까? 처음엔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한 잔'이었다. 그게 두 잔이 되고, 한 병이 되고, 어느새 술 없이는 하루를 마무리할 수 없게 되었다.
술은 나에게 용기를 줬다. 아니, 용기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용기가 아니었다. 술은 내면의 공허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조금의 취함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쉽게 탐닉으로 기울 수 있는지 나는 이제 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주인공이 부두에서 추는 그 춤. 동료 교사의 죽음 이후,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고 싶은, 느끼고 싶은 인간의 본능. 그는 춤을 춘다. 술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힘으로.
술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우리를 삼켜버리는 그림자다. 나는 진실을 쫓다가 그림자 속에 숨어 지냈다. 조금 부끄럽다.
100일만 하면 몸이 적응하고 정신이 변화를 알아챈다고 한다. 지금은 7일째. 아직 93일이 남았다. 먼 길이다. 하지만 포기만 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 오늘 하나만 하면 된다.
오늘 저녁, 덤벨을 들며 숨이 차올랐을 때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땀이 흐를 때 나는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끝까지 해냈을 때 나는 나를 조금 믿게 되었다.
그림자에서 나오는 방법은 빛을 향해 한 걸음씩 걷는 것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아침 운동을 포기했지만 저녁에 다시 했다. 그게 전부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것. 넘어져도 일어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100일 후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새벽 식은땀에 젖어 깨어나도, 비가 와서 계획이 틀어져도,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오늘의 나에게.
뛰지는 못했지만 오늘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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