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화창하고 청명하며 쌀쌀하다.
기온: 최저 -2도, 최고 6도
아이는 어느새 키가 나를 넘보는 정도까지 자랐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
어제까지 손을 잡고 걷던 아이가, 이제는 먼저 앞서 걸어간다. 뒤에서 보는 등이 낯설다. 어깨가 넓어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목소리가 변했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학습, 진로, 관계, 미래… 내가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 점점 많아진다.
"아빠는 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해?"
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말을 잃는다. 내 인생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아이의 인생에 답을 줄 수 있겠는가.
🌱 아이의 성장 앞에서 부모는 작아진다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뒤를 지키고 서 있다.
예전에는 내가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숟가락 쓰는 법, 신발 끈 묶는 법, 자전거 타는 법.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내 손을 잡고, 내 뒤를 따라왔다.
이제는 다르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밀어주는 단계가 되었다. 앞에서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는 존재.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앞에서 끌 때는 내가 통제할 수 있었다.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위험을 막을 수 있었다.
뒤에서 지킬 때는 다르다. 아이가 넘어지는 걸 봐야 하고, 아이가 실수하는 걸 참아야 하고, 아이가 고통받는 걸 견뎌야 한다.
칼릴 지브란의 시 《예언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가 스스로를 그리워하며 낳은 아들딸입니다."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다. 나를 거쳐 세상으로 가는 존재다. 나는 그저 잠시 길을 안내하는 사람일 뿐이다.
💪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며칠 전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이번에 혼자 결정하고 싶어."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혼자? 실패하면 어쩌려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결정해."
그리고 밤새 잠을 설쳤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은 때로 놓아주는 것이다. 어쩌면 더 빨리 놓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것,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게 두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부모들은 모두 잘 알것이다.
이래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안다고 하는것 같다.
🏃♂️ 나를 지켜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아침 달리기를 나가며 생각한다.
아이를 놓아주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다칠까 봐? 실패할까 봐?
아니다. 사실은 내가 필요 없어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아이가 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더 이상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장이다. 아이의 성장이자, 나의 성장이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를 주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바로 나에게서 내 건강에서 내 강함에서 나온다. 나를 지키지 못하면 아이를 지킬 수 없다. 나를 지키지 못하면 아이를 놓아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5분 달리며 나는 내 마음을 다잡는다. 매일 5분 쓰며 나는 내 역할을 정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지킨다.
🔥 아이들을 믿었던 부모들의 이야기
토마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 에디슨은 아들을 학교에서 퇴학당했을 때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말했다. "이 아이는 배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믿었다. 그리고 직접 가르쳤다. 통제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호기심을 따라갔다.
에디슨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확고한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발명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 폴과 클라라 잡스는 아들이 대학을 중퇴하겠다고 했을 때 막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다. "비싼 등록금을 냈는데!" 하지만 부모는 아들을 믿었다. "네가 선택한 길이면 괜찮다." 그 신뢰가 애플을 만들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꿈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다.
🌙 오늘의 달리기, 오늘의 기록
5분을 뛰고 돌아와 노트를 편다.
아이에 대한 걱정을 적다가, 결국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남았다.
"너는 잘 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나는 여기 있을 것이다."
그 문장을 쓰며, 그 말이 나에게도 들렸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 부모로서 완벽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 잘못된 조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나도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
"아이들은 자란다. 나는 버틴다."
성장은 아이의 몫이지만, 버티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가 넘어질 때 달려가지 않는 것, 아이가 선택할 때 간섭하지 않는 것, 아이가 고통받을 때 대신 아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 부모의 역할은 변한다
나는 더 이상 앞에서 끌어가는 존재가 아니다.
옆에서 걸어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뒤에서 지켜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성숙이다.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를 돕는 가장 위대한 신호는 '혼자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평평한 길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 오늘, 당신에게 묻습니다
혹시 당신도 아이를 놓아주기 힘드신가요?
아이의 선택이 걱정되시나요?
아이가 실패할까 봐 두렵나요?
아이가 다칠까 봐 미리 막고 싶으신가요?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불안하신가요?
괜찮습니다.
그 마음, 모든 부모가 느낍니다. 나도 매일 느낍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아이는 당신의 작품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입니다.
아이는 실패할 권리가 있습니다. 넘어질 권리가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지켜볼 의무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필요할 때 달려가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어주세요.
그것이 지금 시대의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 아이가 커가는 만큼 나도 변화한다
부모의 역할은 변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 나는 여전히 그 아이의 첫 번째 울타리라는 것.
보이지 않더라도,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 있다.
아이가 세상에 나가 싸울 때, 아이가 지쳐 돌아올 때, 아이가 외로워할 때.
나는 여기, 변함없이 서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지막 역할이다.
시인 류시화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간섭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나는 곁에 있다.
나는 믿는다.
나는 기다린다.
아이여, 네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 내일도, 나는 아이를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