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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 생각

헐과 대박으로 줄어든 우리의 감정 표현

by SSODANIST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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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과 대박, 그 납작해진 세계에 대하여

어느덧 사십 대 후반, 인생의 허리를 지나고 있다. 돋보기를 찾을 나이가 되었으며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가끔은 현기증 나게 빠르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특히 거리에서, 카페에서 들려오는 젊은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묘한 이질감과 함께 서글픔이 밀려오곤 한다.

놀라도 "헐", 기뻐도 "대박", 슬퍼도 "헐", 맛있어도 "대박". 마치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이 두 단어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빈곤해진 언어, 가난해진 마음

얼마 전, 아끼는 후배 녀석을 오랜만에 만났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청첩장을 내밀며 결혼 소식을 전하는 그 녀석 앞에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슴속에서는 뭉클함과 대견함,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 같은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런데 정작 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말은 고작 "와, 대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가벼운 두 글자가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너의 새로운 출발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진심으로 축복한다', '마음 깊이 응원한다'는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조차도 이 납작하고 편리한 언어의 습관에 젖어버린 것이다. 마치 30첩 반상의 풍성한 한정식을 두고, 캡슐 알약 하나로 끼니를 때운 듯한 허기짐이 느껴졌다.

어휘의 양이 곧 지식의 양이다

독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개수는 단순히 국어사전의 두께 문제가 아니다. 어휘의 양은 곧 지식의 양이며, 더 나아가 세상을 인식하는 해상도(Resolution)의 차이다.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표현할 때 '파랗다'라는 단어 하나만 아는 사람과, '쪽빛', '청명하다', '푸르스름하다', '검푸르다'를 아는 사람이 바라보는 하늘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보는 하늘이 흑백 TV라면, 후자가 보는 하늘은 8K UHD 화면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이 고해상도의 세계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긴 글을 읽지 못하며, 3줄 요약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언어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깊이 생각하고, 적확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침묵하는 시간은 '지루함'으로 치부된다. 그 빈틈을 '헐'과 '대박' 같은 감탄사가 황급히 메운다.

'빨리빨리'가 앗아간 감정의 결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 아니 우리가 20대였던 시절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물론 이메일로 대체되고 있었지만  밤을 새워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상대를 향한 배려와 그리움, 애틋함이 문장마다 배어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마음이 쓰인다", "애처롭다", "가슴이 저리다"... 이런 표현들 속에는 상황의 맥락과 사람의 온도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효율'이라는 잣대로 재단된다. 감정 표현조차 가성비를 따진다. 구구절절 마음을 설명하는 것은 '진지충'이나 '설명충'이라 조롱받기 십상이다. 그러니 우리는 점점 더 안전하고 쿨해 보이는 '대박' 뒤로 숨는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생각의 축소' 현상을 반영한다. 깊게 사고하지 않으니 어휘가 줄어들고, 어휘가 줄어드니 다시 사고가 얕아지는 악순환이다.

품격 있는 어른의 언어를 위하여

말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잃는 것이다. '헐'과 '대박'으로 퉁쳐버린 감정들은 해소되지 못한 채 찌꺼기처럼 내면에 쌓인다.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이 분노인지, 서운함인지, 아니면 비참함인지 구별할 언어가 없으니, 그저 뭉뚱그려진 스트레스로 남을 뿐이다.

이제라도 우리, 조금은 불편하고 느리게 살았으면 한다. 40대 후반, 이제는 속도보다 깊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익숙한 '대박' 대신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해보자. 습관적인 '헐' 대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라거나 **"몹시 당황스럽다"고 표현해 보자.

도서관에 꽂힌 수만 권의 책처럼, 우리 안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아름다운 모국어들이 잠들어 있다.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깨워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잃어버린 나의 감정을 되찾고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거칠고 앙상한 단어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품격 있는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보여줘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5년 11월 30일, 11월의 마지막날 나 자신의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SSOD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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