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비수를 내 심장에 꽂는 건, 결국 나였다
멀쩡하던 밤을 기어이 망쳐놓는 데는 딱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그래, 고작 그 인간이 던진 무심한 말 한마디면 됐다. 상대는 이미 코 골며 잘 텐데, 나는 왜 이 거지 같은 말을 밤새 리플레이하며 홀로 고통받는가.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내가 눈치가 없었나?",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같은 되도 않는 질문들을 머릿속에 돌려가며 스스로를 난도질한다. 침대에 누워서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 장면이 재생된다. 감독판, 확장판, 디렉터스 컷까지 전부 다.
이 정도면 사실상 자해 아닌가?
어디선가 '늘 비수를 들고 있는 건 상대방이지만, 그것을 내 가슴에 꽂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서 외쳤다. '젠장, 내가 원해서 아픈 게 아니라고!' 하지만 곱씹을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기가 막힌 셀프 디스였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상대방은 그냥 자기 할 말을 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무심코, 혹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내뱉은 말일 뿐.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받아서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리본까지 달아서 내 마음 한가운데 고이 모셔둔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꺼내 보며 "아, 역시 이건 날카롭구나. 역시 나한테 잘 맞네"라고 확인한다.
솔직히 나는 상대가 비수를 들고 있으면 알아서 기어가서 "여기에 꽂아주세요! 아, 그리고 소금도 좀 뿌려주실래요?" 하고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는 쪽이다. 상대는 그저 무심하게 칼을 들고 서 있었을 뿐인데, 내가 냉큼 달려가서 그 칼날을 낚아채 내 심장에 박아 넣고 피를 흘리며 "너무 아파, 너무 아파!"라고 울부짖는다.
상처를 선택한다고? 나는 상처를 직거래하는 놈이다. 배송비까지 내가 부담한다.
문제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이미 수십 년간 반복해온 패턴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나는 일주일을 끙끙 앓는다. 그들은 그새 그 말을 까맣게 잊었는데, 나는 그 말을 박제해서 내 머릿속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매일 관람한다. 입장료는 내 정신 건강이다.
이쯤 되면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딱 맞다. 타인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다음 날로 넘어갔는데, 나만 혼자 어제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와서 무슨 '렛뎀(Let Them)' 이론인가. 그들이 나를 오해하게 내버려 두라고? 그들이 나를 싫어하게 내버려 두라고? 어차피 내가 뭘 어떻게 해도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게 통제 불가능한 타인의 영역이다.
맞는 말이다. 어쩌라고.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그냥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나한테는 그들이 쏟아내는 평가를 주워 담아 내 자존감을 깎아 먹는 재주밖에 없는데.
정작 웃긴 건, 그렇게 타인의 말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정작 내가 나한테 하는 말에는 무심하다는 거다. "너는 왜 그 모양이야", "넌 맨날 그래", "역시 너는 안 돼" 같은 말들을 나는 매일같이 나한테 퍼붓는다. 남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 절교감인데, 내가 나한테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게 말이 되나.
타인의 비수를 억지로 내 마음의 안방까지 모셔와 밤새도록 그 칼날을 쳐다보며 괴로워하는, 이 지독한 습관을 누가 고쳐줄 수 있겠는가. 결국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스스로를 때리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내 손뿐이다. 그런데 이게 또 쉽지 않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태평양만 한 거리가 있다. 머리로는 안다. '그냥 흘려들으면 된다', '신경 끄면 된다', '내 인생에 집중하면 된다'. 이런 말들, 다 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또 주워 담고 있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인간이다. 알면서도 내일 또다시 그들의 칼을 줍고 내 가슴을 찌르고 있겠지.
다만, 뭐.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말해보는 거지만, 언젠가는 그 비수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주워 담지 않고 발로 툭 차버리고 가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한 번에 안 되면 열 번, 백 번 연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처음에는 주워 담았다가도 나중에 "아, 이거 내 거 아니네" 하고 내려놓는 시간이 조금씩이라도 빨라지면 그것도 진전이다.
완벽하게 초월한 듯 살 필요는 없다. 그건 사기다. 우리는 다 상처받으며 산다.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살자고? 그건 판타지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상처를 두 번, 세 번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엿 먹이는 일은 그만두기로 해보자. 상처는 받되, 그걸 내 집에 들여놓고 함께 살지는 말자. 손님으로 잠깐 들렀다 가게 하자.
그래야 덜 비참하잖아.
오늘 밤만은, 그 칼이 당신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편안히 잠들기를. 내일 또 실수하더라도, 그래도 오늘 하루는 조금 덜 등신같이 살아보자고. 나처럼 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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