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고기능 우울증
부제: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
저자: 주디스 조셉
옮긴이: 문선진
출판: 포레스트북스
출간: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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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 우울증 | 주디스 조셉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우울조차 감지하지 못할 만큼 성실함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하루를 버티는 현대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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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에게, 나에게 보내는 지도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문득 깨닫는 것이 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으며,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내 몫을 해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안의 엔진이 고장 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쁨도 슬픔도 옅어진 채, 그저 '해야 하니까' 버티고 있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문득 찾아온 공황 발작은 내게 '당신은 괜찮지 않다'고 소리치는 마지막 경고 알람 같았다.
그때 당장은 책도 눈에 안 들어왔다. 집중도 할 수 없었고 글자를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회복하며 마음, 정신, 그리고 회복에 관한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주한 이 책, 제목보다는 부제인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에 이끌렸다.
완벽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공허함
돌이켜보면, 나는 늘 '완벽주의'와 '성실함'이라는 갑옷을 입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프로' 소리를 들었고, 가정에서는 '헌신적인' 배우자 또는 부모 역할을 해냈다. 친구들의 경조사도 놓치지 않았고, 맡은 일은 반드시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더 좋은 결과로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지친' 사람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가면 뒤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잘해야 해. 여기서 멈추면 안 돼. 네가 약해지면 모두 무너진다.'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함은 깊고 날카로웠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봐도 감동이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혀끝만 만족할 뿐 마음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울한 사람'의 전형, 즉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내 고통은 언제나 '그냥 힘든 것'이나 '책임감의 무게'로 치부되었다. "힘들면 쉬어라"는 말을 들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나의 성실한 세상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이 결국 공황 발작이라는 물리적인 경고로 터져 나왔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쿵쾅거려 응급실을 찾아야 했던 그 순간,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부제처럼, 나는 겉으로는 멀쩡하게 '기능'하고 있었지만, 속은 이미 심각하게 '고장' 나 있었던 것이다.
진단에서 오는 안도감: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다
처음에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공황이 오는 것 같았다. (물론 돌아보면 사람이 많은 장소여서 그런 듯도 하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의사인 저자의 진단과 통찰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진단'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나는 그저 나약하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 HFD)'이라는, 성실함과 완벽주의라는 옷을 입고 숨어버린 새로운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HFD는 고전적인 우울증의 모습과는 달랐다.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대신, 우리는 출근을 하고, 회의를 주도하며, 밤늦게까지 밀린 집안일을 해낸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감정 없이 해낸다는 것이다. 마치 뚜껑이 닫힌 압력솥처럼, 내면의 고통을 꾹꾹 눌러 담아 효율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임상 연구를 바탕으로 이 병의 실체를 정면으로 다루는데, 그 과정이 매우 따뜻하고 공감적이다. 나의 고통이 '실제 하는 것'임을, 그리고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님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이제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병'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갖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나로 돌아가는 지도: 미세한 궤도의 수정
책은 진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렛뎀의 저자 멜 로빈스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로 돌아가는 지도"라고 표현했듯이, 이 책은 회복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V(The Five V's)' 같은 실천적인 도구들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회복'이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미세한 궤도의 수정'임을 다시 한번 배웠다. 벼락처럼 모든 것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HFD를 앓는 사람들은 이미 에너지를 '최대치'로 쓰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을 요구하는 처방은 오히려 독이 된다. 대신, 이 책은 우리가 오랫동안 성과와 역할에 몰두하느라 무시해왔던 우리 자신의 감정, 몸의 신호, 그리고 일상의 작은 기쁨들에 다시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특히 나에게 큰 울림을 준 것은 Vitals(활력 징후)를 살피라는 조언이었다. 나는 매일 밤 4시간만 자는 것을 '성실함'의 상징처럼 여겼다. 피곤해도 커피를 두 잔씩 마시며 버티는 것이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묻는다. "당신의 수면, 식사, 움직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정의 활력 징후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침 식사를 빨리 해치우고, 피로해도 쉬지 않고 멍하니 스마트폰만 보던 습관들이 사실은 내 몸이 보내는 작은 경고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미세한 궤도의 수정은 예를 들어, 바쁘더라도 잠시 멈춰 서서 5분간 심호흡을 하거나, 누군가의 부탁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작은 용기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작은 멈춤과 거절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버티는 삶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최근 들어 더 이상 '기계'처럼 버티기만 하는 삶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공황과 우울은 이제 더 이상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살피고 돌보라는 내면의 목소리였다.
지금, 겉으로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홀로 지쳐가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버티고 있는가? 이 질문을 마주하는 용기만 있다면, 저자가 건네는 회복의 지도는 잃어버렸던 '나'라는 감각을 되찾는 여정의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다. 성실함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디 당신도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고,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평온과 기쁨을 되찾길 빌어 본다.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따뜻한 자기 발견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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