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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 생각

살아진다, 견뎌진다_공황장애를 이겨내며

by SSODANIST 202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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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진다, 견뎌진다

 

그해 여름,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공황이라는 이름의 검은 파도가 아무런 예고 없이 밀려왔다.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심장은 제멋대로 요동쳤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공포.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나는 추웠다. 온몸이 떨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어느 날,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한여름 볕을 올려다보았다. 저 푸르른 나뭇잎들. 지금은 저토록 싱그럽게 빛나지만, 언젠가는 노랗게 물들 것이고, 바스락거리며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릴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봄이 올 것이다.

 

계절은 멈추지 않는다.

 

그 단순한 진리가 그날 처음으로 내 가슴에 닿았다. 지금 이 고통도, 이 두려움도, 영원하지 않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나의 이 고통에도 계절이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하루에 열 번씩 되뇌었다.

 

살아내자. 견뎌내자.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내자. 출근길 지하철에서 숨이 막혀올 때, 견뎌내자. 회의 중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릴 때, 살아내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견뎌내자. 마치 주문처럼, 기도처럼, 그 두 마디를 품고 하루하루를 건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그토록 뜨겁던 여름은 지나갔고, 낙엽이 쌓였고, 첫눈이 내렸고, 매서운 겨울이 왔다가 물러갔다. 그리고 지금, 봄이 코앞이다.

벌써 일 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살아졌다'는 것을. 내가 온 힘을 다해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견뎌지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견뎠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만큼 주먹을 쥐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사투처럼 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견디는 것이 덜 힘들어졌다. 공황의 파도가 여전히 밀려왔지만, 예전만큼 높지 않았다. 그리고 파도가 지나간 뒤에 남는 고요함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내자, 에서 살아진다, 로.

견뎌내자, 에서 견뎌진다, 로.

 

이 작은 어미의 변화 속에 일 년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능동에서 수동으로의 전환. 하지만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겸허함이다. 내 의지만으로 이 삶을 버텨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데려다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함.

스토아 철학자들은 말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나는 공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언제 밀려올지, 얼마나 거셀지,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파도 앞에서 쓰러지지 않겠다는 마음만큼은 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의지가 하루를 버티게 했고,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계절이 되어, 마침내 일 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그 뜨거운 여름날,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던 햇살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계절은 반드시 바뀐다는, 이 여름도 지나간다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자연의 약속.

그 약속을 믿고 나는 버텼다. 아니, 버텨졌다.

이제 곧 봄이다. 다시 새잎이 돋을 것이다. 작년 그 자리에 서서, 푸른 잎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아졌다. 견뎌졌다. 그리하여, 여기 서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지금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쓰러질 것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대에게 말하고 싶다. 하루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되뇌어도 좋다. 살아내자, 견뎌내자. 그 다짐이 언젠가는 '살아진다, 견뎌진다'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계절은 반드시 바뀌니까.

당신의 여름도 지나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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