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AI로 차트, 그래프, 인포그래픽 한 번에 끝내기
- 부제: 보고서ㆍ제안서ㆍ기획서, 단번에 OK 받는 실전 업무 시각화
- 저자: 이현
- 출판: 천그루숲
- 출간: 2026년 1월
오늘 배운 기술이 내일도 신기술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엑셀 차트 앞에서 참 많은 밤을 보냈다. 축 간격을 조절하고, 색상을 맞추고, 범례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넘는다. 정작 보고서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는 잊은 채, 막대그래프의 모서리 둥글기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묘한 자괴감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데이터는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데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쏟고 나면 정작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라는 상사의 한마디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현 작가의 《AI로 차트, 그래프, 인포그래픽 한 번에 끝내기》는 바로 그 지점, 실무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시각화의 고통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책이 다른 AI 도구 안내서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단순히 '이 버튼을 눌러라, 이 프롬프트를 입력해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이 질문이 이 책의 뼈대이고, 나머지 모든 기술적 안내는 그 뼈대 위에 붙는 살이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제안하는 'A.C.T.S.'라는 프롬프트 뼈대가 눈에 들어온다. 자료를 조사하고 컨셉을 정리하는 '브레인 AI'로 퍼플렉시티, 챗GPT, 제미나이를 배치하고, 시각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디자인 AI'로 냅킨, 미리캔버스, 리크래프트를 활용하며, 데이터의 본질을 파악하는 '분석가 AI'로 그래피, 나노바나나, 노트북LM을 소개한다. 마치 한 사람의 실무자에게 전문가 팀을 통째로 붙여주는 것 같은 구성이다. KPI 대시보드에서 프로젝트 로드맵, 브랜드 스토리북까지 — 직장인이라면 매일 마주하는 문서들을 AI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꽤나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이 기술이, 과연 내일도 여전히 신기술일까?
냅킨AI가 내년에도 존재할까. 퍼플렉시티의 인터페이스가 반년 뒤에도 같은 모습일까.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다. AI 도구의 세계는 매주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고, 어제의 최강자가 오늘 문을 닫기도 하는 전쟁터와 같다. 그래서 이런 류의 실용서를 집어 들 때마다 늘 같은 의심이 고개를 든다. '이 책에 나오는 도구가 사라지면, 이 책도 쓸모없어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나의 결론은 조금 달라졌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특정 도구의 사용법이 아니라, '시각화적 사고'라는 근육을 키워준다는 데 있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엑셀로 그래프를 '만들던 시대'에서 AI에게 그래프를 '주문하는 시대'로 넘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주문'을 잘하려면,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 도구는 바뀌어도 이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책에 수록된 프롬프트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한 명령문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 훈련이다. "이 데이터에서 핵심 지표가 바로 보이도록 강조해 줘"라고 AI에게 요청하려면, 먼저 내가 핵심 지표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흐름이 한눈에 보이게 정리해 줘"라고 말하려면, 흐름 자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AI는 내 생각을 시각화해주는 통역사이지, 내 생각을 대신 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마흔 후반의 나이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젊은 직원들은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익히지만, 때로는 도구의 화려함에 매몰되어 메시지를 놓친다. 경력 있는 실무자들은 메시지를 알지만, 도구 앞에서 주춤한다. 이 책은 그 둘 사이의 다리를 놓아준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정리하는 힘"과 "AI에게 정확히 지시하는 기술"을 동시에 길러주는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AI 도구의 세계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책에 소개된 서비스의 인터페이스나 기능이 독자가 읽는 시점에는 이미 달라져 있을 수 있다. 스크린샷 기반의 따라하기 방식은 그 숙명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도 이를 의식한 듯, 도구 자체보다 프롬프트의 구조와 시각화 전략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래서 특정 도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도구에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업무 시각화는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나는 이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의 목표는 아름다운 차트가 아니라,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은 도구가 아니라 사고에서 나온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오늘 배운 이 기술이 내일도 신기술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냅킨AI는 다른 이름이 될 수 있고, 프롬프트 형식은 더 간결해질 수 있으며, 어쩌면 말 한마디로 대시보드가 완성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숫자들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힘, 데이터 앞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는 눈은 어떤 기술 혁명에도 유효기간이 없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도구가 아니라 그 눈이다.
264쪽짜리 실용서 한 권이 내 야근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꽤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번 보고서를 열 때 "어떻게 그릴까"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순서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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