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눈이 내렸다
기온: 최저 -4도, 최고 6도
오늘 오전은 바쁘게 보냈다. 강원도 고향으로 가는 날.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다시 점검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약과, 어머니가 드시는 한과, 그리고 손자에게 용돈을 주실 부모님을 위해 내가 따로 준비한 작은 감사 편지 한 장. 봉투에 넣으면서 손이 떨렸다. 48년을 살면서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 처음이다.
오후 2시, 차에 올랐다. 아내, 아들, 셋이서. 강원도까지 3시간 남짓. 고속도로는 명절 귀성 차량으로 막혔다. 하지만 이상하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막힌 도로 위에서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고향으로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리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차창 밖으로 강원도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쌓인 산. 어릴 때 뛰어다니던 그 산. 48년이 지났는데 산은 그대로다. 나만 변했다. 아니, 나는 변했는데 정말 변한 걸까. 고향 앞에 서면 언제나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 어린아이는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부모님이 필요하다.
저녁, 고향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문 앞에 나와 계셨다. 아버지도 뒤에서 기다리셨다. 아들이 먼저 뛰어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 나는 그 뒤에서 잠깐 멈췄다. 저 두 분이 나를 만들었구나. 48년을 키워주셨구나.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나 죄송한가. 자주 오지 못해서. 전화도 자주 못 드려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 손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48년간 이 밥을 먹고 자랐다. 당연하게 여겼다. 도시로 떠나면서 당연하게 떠났다. 돌아오지 않았다. 일이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진실은?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고향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이. 성공하지 못한 아들처럼 느껴지는 것이.
밤, 부모님과 오랜만에 오래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물으셨다. "요즘 몸은 어때?" 1년 전 공황장애. 말씀드린 적이 없다. 걱정 끼치기 싫어서. 하지만 오늘은 말씀드렸다. "사실 작년에 좀 힘들었어요. 공황장애라는 게 왔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매일 달리고, 매일 글 쓰면서."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셨다. "왜 말 안 했어. 엄마한테라도 말하지." 그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벗어도 된다. 부모님 앞에서만큼은. 돌아가는 용기. 고향으로, 부모님께로. 그 용기가 오늘 가장 큰 치유였다.
🌱 토머스 울프 -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밤, 토머스 울프의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You Can't Go Home Again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고향은 항상 있는데, 왜 돌아갈 수 없다는 걸까.
이제 안다. 우리가 떠난 고향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변한다. 어린아이였던 내가 48세가 됐다. 순수했던 내가 복잡해졌다. 겁 없던 내가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도 예전의 그 느낌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울프의 말을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 부모님이 계신 이 고향집. 시간이 지나면 이 모습도 사라진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가면 없이.
💪 고향을 당연하게 여겼던 세월들
노트를 꺼내 솔직하게 적었다. 20대에 고향을 떠났다. 도시로. 성공하러. 처음 몇 년은 자주 갔다. 하지만 점점 뜸해졌다.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핑계를 댔다.
30대는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의무처럼. 가면을 쓰고 갔다. "잘 지냅니다. 걱정 마세요." 빨리 먹고 빨리 올라왔다. 2-3일도 못 있었다. 부모님은 오래 계시길 원하셨지만. 나는 도시가 바빴다.
40대는 더 심했다. 아이 교육, 일, 바쁜 일상. 1년에 한두 번. 갔다 와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자고, 올라왔다. 부모님의 마음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부모님이 어떻게 사시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1년 전 공황장애가 왔을 때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걱정 끼치면 안 된다는 핑계로. 하지만 사실은 초라해 보이기 싫었다. 48세가 됐는데 이런 병이 왔다는 것이. 가면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벗었다. 늦었지만.
🏃♂️ 오늘의 달리기 - 고향 새벽
오늘 아침 달리기는 고향에서 했다. 새벽 6시. 고향 마을 길을 달렸다. 어릴 때 뛰어다니던 그 길. 48년이 지났는데 길은 그대로다. 콘크리트가 됐지만, 그 구불구불함은 그대로다.
7분을 달리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 길에서 자전거 타고, 이 논두렁에서 개구리 잡고, 저 산에서 친구들과 뛰놀았다. 그때는 달리기가 놀이였다. 즐거움이었다. 언제부터 달리기가 의무가 됐을까. 건강을 위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의무. 하지만 오늘 고향 새벽 길에서는 놀이로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그 가벼움으로.
벤치가 없어 돌담 위에 앉았다. 조용했다. 강원도 새벽 공기는 도시와 달랐다. 맑고 차가웠다. 폐 깊이 들이쉬었다. 6개월 넘게 달렸지만 오늘 달리기가 가장 아름다웠다. 고향에서, 어릴 때 뛰던 그 길에서.
🌙 밤의 감사
밤 11시, 부모님이 주무시고 나서 혼자 앉아 노트를 썼다. 고향집 거실. 낡은 소파. 어릴 때부터 있던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낸다.
부모님께 감사한 것들:
- 48년간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신 것
- 도시로 보내주신 것. 당신들은 고향에 남으면서
- 아플 때 걱정해주신 것. 말 못 드렸지만 느꼈다
- 손자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는 것
- 아직 건강하게 계신 것. 이것이 가장 큰 감사
부모님께 죄송한 것들:
- 자주 오지 못해서
-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해서
- 공황장애 1년간 말 못 드려서
-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것
- 효도를 말로만 한 것
오늘의 결심:
-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전화드리기
- 분기에 한 번은 내려오기
- 다음에 올 때는 더 오래 있기
- 힘들 때 말씀드리기. 걱정 끼쳐도 괜찮다
적다 보니 눈물이 났다. 48년간 받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드린 것은 너무 적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다. 늦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내일 설날, 온 가족이 함께한다.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 오늘의 약속
눈을 감으며 다짐했다. 고향에 더 자주 오겠다. 부모님께 더 자주 전화드리겠다. 가면을 벗고 진짜 아들로 있겠다. 힘들 때도 말씀드리겠다. 부모님이 계신 동안, 후회 없이.
내일은 설날이다.
온 가족이 함께한다.
부모님이 계신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
감사하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