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
서늘한 기운에 잠이 깼다.
전날 일기예보에서 추워진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잠들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밤과 새벽 사이, 계절의 경계를 넘어 겨울이 성큼 다가온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이불이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었고,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에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일 년 내내 수면 양말을 신고 자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발끝까지 시린 기분이 들었다.
계절은 또 한 번 아름다운 가을을 오래 남겨두지 않았다. 단풍의 여운을 즐기는 사이, 가을은 이미 작별을 준비하고 겨울왕국으로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정말 예고도 없이, 갑자기 겨울의 입구에 서 있는 느낌이다. 두꺼운 옷을 꺼내고, 동파에 대비하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살림을 정돈해야 할 때가 왔다.
직업 병이라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기온과 날씨인데, 오늘은 어제보다 아침 기온이 거의 10도는 떨어져 있었다. 점점 커지는 일교차. 나이가 들수록 기온이 극으로 치닫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정말 기분 탓일까?
최저 기온 5도, 최고 기온 16도. 아직 추운 날씨에 러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류를 잘못 선택해 무작정 뛰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프면 그로 인해 불편해 질 일상이 너무나 많다. 이불을 정리하고 물 한 잔을 마신 뒤 책을 펼쳤지만, 반바지 반팔 잠옷 차림으로는 제법 쌀쌀함이 느껴졌다. 맑지도 않은 날씨에 햇살마저 아직 없으니 더욱 기온이 낮게 느껴졌다.
다산의 글들을 읽으며 아침을 준비하고, 다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일터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건강이 염려되어 아침 러닝은 포기했지만, 저녁에 체육관에서 무리하지 않고 운동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핑계와 선택 사이
아침에 못한 운동을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날씨 탓인지 체육관은 한산했다.
'날씨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참 여러 가지 핑계가 우리의 일상을 방해한다. 나도 오늘 아침 "날씨가 추워서",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서"라는 핑계가 없었다면, 지금쯤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실패와 오류에서 배우고 다시 같은 실수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저녁이라도 땀을 흘리니 좋다.
신나게 한바탕 땀을 흘리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니, 차가워진 밖 기온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 감각, 이 순간이 소중했다.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을까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을까?
물처럼 마시던 술을 타의도 있었지만 자의로 끊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약을 먹고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긴다. 좋은 글, 힘나는 글, 동기부여되는 글들을 찾아 읽고 영상을 보며 매일 명상하고 호흡 연습을 한다. 차분해지려 노력하며 화를 내지 말자 다짐한다.
갑자기 너무도 달라진 내 모습이 문득 낯설어졌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살기 위해서였다.
무너짐의 기록
처음 그것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회의 중에 갑자기 숨이 막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공포로 가득했다.
"왜이러지, 이제게 죽는 건가."
그날 이후, 공포는 일상이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지어 가족과 함께 있는 저녁 식탁에서도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불안은 나를 삼켰고, 공황은 나를 무너뜨렸다.
마흔일곱 살 가장이 무너지는 것은 조용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회사 동료들도 몰랐다. 나는 견뎠다. 아니, 견디는 척했다.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술로 하루를 시작했다. 술이 있어야 잠들 수 있었고, 술기운이 있어야 출근할 수 있었다.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살아."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거울 속 내 눈은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갔다.
깨달음의 순간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열세 살 아들이 물었다. "아빠, 왜 요즘 아빠는 우리랑 눈을 안 마주쳐요?"
아이의 눈에도 보일 만큼, 나는 이미 멀리 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혼자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여느 때처럼 술잔이 들려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숨은 쉬지만 숨 쉬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먹지만 맛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살고 싶다."
간절했다. 절박했다. 아들의 졸업식에 가고 싶었다. 결혼식에서 웃고 싶었다. 아내와 늙어서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싶었다. 그저, 살고 싶었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손을 떨며 술병을 버렸다. 가족에게 말했다. "아빠가 아프다. 도와줄래?" 아내는 울었고, 아이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병원을 찾았고, 상담을 받았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술 없는 밤은 지옥 같았다. 공황은 여전히 찾아왔고, 불안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세 끼를 챙겨 먹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공원을 걸었다. 저녁에는 유튜브를 보며 호흡 연습을 했다. 좋은 글을 찾아 읽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누군가의 위로가 가슴에 와닿았다. 명상 앱을 깔았고, 매일 10분씩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화가 날 때면 심호흡을 했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변화는 느렸다. 어떤 날은 한 발짝 나아갔고, 어떤 날은 두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살고 싶었으니까.
살기 위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도 가끔 묻는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살기 위해서다.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고, 모레를 살기 위해서. 아침 햇살을 느끼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아내의 손을 잡기 위해서.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유였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힘든가요? 당신도 매일 무너질 것 같나요? 당신도 숨 쉬기가 버거운가요?
그렇다면 제가 말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무너져도 됩니다. 울어도 됩니다. 도움을 청해도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놓치지 마세요. "나는 살고 싶다"는 그 마음, 그 간절함. 그것만 있다면 우리는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변화는 극적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술을 마시지 않는 것, 세 끼를 챙겨 먹는 것, 10분 산책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를 살게 합니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불안이 찾아오고, 가끔 무너질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 오늘처럼 추운 날씨 탓에 아침 러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녁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면 다시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고 싶으니까.
당신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한 발짝씩 걸어갑시다.
살기 위해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도 나는 5분을 뛰고, 5분을 썼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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