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다시 포근해 졌다.
기온: 최저 5도, 최고 13도
🌅 계절과 무관한 한기
날씨는 괜찮은데, 마음은 이상하게 서늘하다.
캘린더를 보니 11월 말. 겨울의 문턱. 하지만 내 마음의 겨울은 벌써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계절이 마음을 따라오는 것인지, 마음이 계절을 앞서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이럴 때의 달리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고, 글쓰기도 조금 더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중력이 나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걸음 하나하나에 저항이 느껴진다. 하지만 겨울은 지나기 위해 오는 계절이라는 것을 안다. 봄이 영원하지 않듯, 겨울도 영원하지 않다. 사계절은 돈다. 멈추지 않고, 머물지 않고, 계속 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그것이 또한 마음의 법칙이다.
❄️ 예고 없이 찾아온 냉기
괜찮아 지는듯 심더니 또 갑자기 이유 없이 우울해 진다. 그리고 심장이 요동친다. 전날 밤에는 괜찮았다.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거운 담요가 마음을 덮고 있었다.
일어나기 싫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이 싫었다. 이유도 없이.
정신적으로는 이것을 '우울 삽화(depressive episode)'라고 부른다.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의 파도. 예고도 없고, 이유도 불분명하다. 그저 마치 감기처럼 왔다가 또 사라진다.
40대 후반을 살며 이런 날들을 많이 경험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렇게 약해졌지?' 자책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은 약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마음의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안다. 다만 누구는 이를 인정하고, 누구는 숨길 뿐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다. "우리는 빛에서 태어났지만 그림자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울, 슬픔, 고독. 이것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깊게 만든다.
🌨️ 견디는 것과 통과하는 것
우울함에는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냥 견디고 있다.
하지만 이 견딤이 결국 문제가 된다. 견디지 말고 통과해야 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견딘다는 건 참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 하지만 통과한다는 건 함께 가는 것이다. 우울을 적으로 보지 않고, 지나가야 할 길로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울을 견뎌왔다. 싸워왔다. 이겨내야 할 적으로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힘들었다. 우울은 싸울수록 강해진다. 저항할수록 더 깊어진다.
마음의 겨울은 때로 생각보다 길다.
몇 주가 될 수도 있고, 몇 달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가장 긴 겨울은 1년을 지속되고 있다. 공황장애가 처음 왔을 때. 그때 나는 견뎠다. 매일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겨내야 해.' '극복해야 해.' 하지만 이길 수 없었다. 오히려 더 깊은 우울에 빠졌다.
지금은 다르게 한다. 견디지 않는다. 통과한다. 우울이 오면 맞이한다. '왔구나. 함께 가자.'
🔥 작은 온기의 의미
때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나간다.
하지만 달릴 때 몸에서 생기는 열기, 글을 적으며 생기는 온도가 천천히 나를 녹인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간단하다. 운동하면 엔돌핀이 분비된다.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간다. 이것들이 우울을 완화한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과학이 아니다. 경험이다. 실제로 달리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완전히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견딜 만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기 전에는 혼란스럽던 감정들이, 문장으로 옮기고 나면 조금 정리된다. 이름 붙일 수 없던 감정에 이름을 주면, 그것은 조금 덜 무섭다.
오늘의 5분은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한 아주 작은 난로 같다.
5분으로 겨울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5분 동안은 따뜻하다. 그리고 그 따뜻함의 기억이 다음 5분을 가능하게 한다.
니체의 말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나에게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내일 아침 다시 달리는 것. 그게 전부다.
🌑 겨울의 선물
혼자 앉아 차를 마시며 생각한다.
겨울은 불편하다. 춥고, 어둡고, 외롭다. 하지만 겨울이 주는 선물도 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목(裸木)의 아름다움. 옷을 벗은 나무는 추하지 않다. 오히려 가지의 구조, 줄기의 힘, 뿌리의 방향.본질이 드러난다.
마음의 겨울도 그렇다. 행복의 옷을 벗었을 때, 나의 본질이 드러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름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푸르고 화려하고 분주하니까. 하지만 겨울에는 질문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멈추고 조용하고 적나라하니까.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더 따뜻하다." 이 문장을 노트에 적는다. 위안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이다. 경경험으로 안다. 가장 깊은 우울을 지나고 나서 느낀 기쁨. 그것은 특별했다. 평범한 날의 평범한 기쁨과는 달랐다.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쁨.
💭 겨울의 작업
일요일 마무리 한 주를 돌아본다.
몸과 마음이 함께 조금씩 풀렸다.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겨울이다. 하지만 추위가 조금 덜하다.
기록 속 문장은 짧았지만 묵직했다.
"겨울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잘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다는 말이 예전에는 부정적으로 들렸다. 마치 간신히 살아있다는 뜻처럼.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버티는 것도 하나의 용기다. 포기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승리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말했다. "미래는 우리 안에 훨씬 전부터 들어와 있으며, 우리 안에서 변화한다." 봄은 이미 겨울 안에 있다. 숨어서 준비하고 있다.
지금 나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이 겨울이 다음 봄의 나를 더 깊고, 더 강하고, 더 부드러운 나를 만들고 있다.
겨울은 파괴의 시간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씨앗이 땅속에서 썩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발아를 준비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지금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 통과의 기술
겨울은 결국 끝난다.
이것은 희망이 아니라 사실이다. 모든 겨울이 끝났다. 내가 경험한 모든 우울이 지나갔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결국 끝났다.
다음 겨울이 올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나갈 것을 알기 때문에두렵지 않다.
나는 내일도, 마음의 온도를 조금 더 올릴 것이다.
5분 달리기로. 5분 글쓰기로. 가족과의 대화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작은 온기들을 모을 것이다. 그것들이 쌓여 봄이 될 것이다.
🌿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지금 마음의 겨울을 지나고 있나요?
이유도 모르게 우울하고, 모든 것이 무겁고, 봄이 올 것 같지 않나요?
견디지 마세요. 통과하세요.
겨울과 싸우지 마세요. 함께 가세요.
작은 온기를 찾으세요. 햇빛, 차, 대화, 움직임.
그리고 기억하세요.
모든 겨울은 끝났다는 것을.
당신의 겨울도 끝날 것이라는 것을.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더 따뜻합니다.
지금의 추위가 다음의 따뜻함을 만듭니다.
오늘도 나는 겨울을 지난다.
견디지 않고 통과한다.
싸우지 않고 함께 간다.
마음의 겨울도 계절이다.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