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십 대 후반의 어느 가을 아침, 거울 앞에 선 나는 낯선 사람을 보았다.
백발이 늘어난 것도, 주름이 깊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 눈동자였다. 어디선가 빛이 꺼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등불처럼, 심지가 타들어가듯,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몸의 노쇠는 예견된 비극이다. 무릎은 낡은 경첩처럼 삐걱거리고, 계단은 어느새 산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견딜 만했다. 진짜 두려운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마음이 돌처럼 무거워지는 것. 아침 햇살이 창문을 두드려도, 봄꽃이 만발해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것. 무기력함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내 영혼의 문을 닫아버렸다.
젊은 날의 나는 불꽃이었다. 세상이 무대였고, 나는 주인공이었다. 밤하늘의 별들도 따올 수 있을 것 같았고, 불가능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 없었다. 넘어져도 웃으며 일어섰고, 실패는 다음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앗아가는 것이 체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은 욕망도, 의지도, 꿈꾸는 능력도 함께 가져간다는 것을.
이제 내 하루는 색을 잃은 풍경화 같다. 해야 할 일들은 산처럼 쌓여 있지만, 손을 뻗을 힘이 없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어느새 희미해졌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하루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이십 대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너의 미래를. 네가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것들을 이루고도, 이렇게 공허할 수 있다고. 네가 두려워하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바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무기력함은 안개처럼 찾아온다. 발소리도, 기척도 없이.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멈춰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데 나는 바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새들은 날아가는데 나는 둥지에 갇혀 있다는 것을. 꿈이었던 것들은 이제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하고, 현실은 안개 속의 길처럼 희미하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스토아 철학자들도 이 싸움을 했다. 로마의 황제도, 왕좌에 앉아서도, 이 고요한 적과 싸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새벽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도 일어나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도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었을 것이다. 황제의 자리도, 세상의 영광도, 무기력함 앞에서는 무력했을 것이다. 세네카는 유배지에서 깨달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고. 무기력함은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릴 때, 쥘 수 없는 모래를 움켜쥐려 할 때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오분을 선택했다.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작은 숨결을. 매일 오분씩 펜을 든다. 쓸 말이 없어도, 마음이 메말라도, 오분 동안만은 손을 움직인다. 그리고 오분을 달린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분만 버틴다.
이것은 저항이다. 조용하지만 완강한. 무기력함이 "멈춰라"고 속삭일 때,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발걸음으로. 펜끝으로. 오분의 글쓰기는 얼어붙은 마음에 내는 첫 금이다. 오분의 달리기는 굳어진 몸에 보내는 생명의 신호다.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오분은 바꿀 수 있다. 인생을 되돌릴 수 없어도, 오늘은 되돌릴 수 있다.
쉬운 날은 없다. 어떤 아침은 펜이 돌덩이처럼 무겁다. 어떤 저녁은 신발 끈을 묶는 것조차 버겁다. 그래도 오분은 지킨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지 않아도, 오분은 나의 것이다. 무기력함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 나는 이 오분을 방패 삼아 버틴다.
나이를 먹으면서 배운 슬픈 지혜가 있다. 몸의 병은 의사가 고친다. 하지만 영혼의 병은 오직 나만이 고칠 수 있다. 무기력함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달려줄 수도, 대신 써줄 수도 없다. 오직 나만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멈춘 마음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 매일. 조금씩. 넘어져도 다시. 그렇게.
무기력함이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는 날, 싸움은 시작된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보는 것. 그것이 첫 승리다. 매일 오분씩. 너무 작아 보이는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
무기력함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그림자처럼. 하지만 나도 여전히 여기 있다. 오늘도 오분을 썼고, 오분을 달렸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저항. 찬란하지 않은 승리. 하지만 나의 것. 그렇게 나는 늙어간다. 무기력함과 함께, 그러나 무기력함에게 지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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