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맑음, 다시일상
기온: 최저 -5도, 최고 6도
다시 일상이다. 회사, 프로젝트, 회의, 마감. 하지만 오늘 좀 여유롭다. 고향에서 돌아온 여운이 남아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 어머니의 떡국 맛, 아버지의 말씀. 마음이 따뜻하고 동시에 묵직했다.
아침을 느리게 먹었다. 아들도, 아내도 늦게 일어났다. 한 테이블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이 고요함이 좋았다. 48년을 살면서 이런 고요한 아침이 얼마나 됐을까. 항상 바빴다. 빨리 먹고, 빨리 가고, 빨리 해결하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느렸다. 그리고 그 느림이 좋았다.
오후, 혼자 오래된 앨범을 꺼냈다. 사진 앨범. 디지털이 아닌 종이 사진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천천히 넘겼다. 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1등을 했다. 빙글빙글 웃는 아이. 그 아이가 나다. 걱정이 없었다. 그냥 달렸다. 지금도 달린다. 하지만 이유가 달라졌다. 그때는 기쁨으로, 지금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지만 달리는 것 자체는 같다. 어쩌면 48세의 나는 그 아이로 돌아가는 중일지도.
결혼사진. 16년 전 아내와 나. 둘 다 어리다. 긴장되고 설레는 표정. 지금은 그 설렘이 남아 있는가. 생각해봤다. 달라졌다. 설렘보다는 감사가, 흥분보다는 안정이. 하지만 그것도 성숙이 아닐까. 설렘에서 감사로 성장한 것이.
아들 갓난아기 사진. 16년 전. 세상 가장 작은 존재가 내 손에 들어왔던 그 날. 지금은 키가 나만큼 자랐다. 시간이 이렇게 빠른가. 아들이 어릴 때 더 함께했어야 했는데. 더 안아줬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저녁, 가족 셋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했다. 앨범을 함께 봤다. "아빠 어릴 때 귀엽다", "엄마 진짜 예뻤네요", "내가 이렇게 작았어요?" 웃음이 났다. 48년을 살면서 오늘 저녁이 가장 충만했다. 특별한 것 없이. 그냥 앉아 사진 보고 웃는 것. 이것이 행복이구나. 이것이 삶이구나. 돌아보는 용기. 과거를 직면하는 용기. 인생을 다시 읽는 용기.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 키르케고르 - "인생은 뒤를 보며 이해하고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밤, 키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렸다. "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must be lived forwards (인생은 뒤를 보며 이해할 수 있지만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짧지만 깊다.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이해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공황장애가 왔는지. 왜 가족과 소원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달렸다. 하지만 오늘 뒤를 돌아봤다. 앨범을 보며. 과거를 직면하며. 이해가 됐다. 왜 그랬는지. 어디서 어긋났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이해하면 앞으로 갈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면서. 키르케고르가 옳았다. 뒤를 보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살 수 없다. 74일간 글을 쓰면서 매일 뒤를 봤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돌아보지 못했던 세월들
노트를 펼쳐 내가 돌아보지 않고 달렸던 순간들을 적었다. 30대 내내 앞만 봤다. 승진, 성공, 돈. 뒤는 안 봤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라 생각했다.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40대 들어서도 마찬가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두려웠다.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후회, 실수, 놓친 기회, 상처 준 사람들. 마주하기 싫어서 앞만 봤다.
1년 전 공황장애가 왔을 때 강제로 멈추게 됐다. 달릴 수 없었다.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뒤를 봤다. 두려웠다. 하지만 봐야 했다. 74일간 글을 쓰면서 계속 봤다. 과거의 나를. 실수들을. 후회들을. 그리고 이해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오늘의 달리기
오늘 아침 달리기는 돌아보며 했다. 7분을 뛰면서 74일을 돌아봤다. 12월 8일 첫 날. "이게 뭐가 되겠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또 썼다. 또 달렸다. 매일. 74일이 됐다.
뛰면서 생각했다. 74일 전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했을까? 아니다.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달라질 줄. 이렇게 성장할 줄. 공황이 이렇게 줄어들 줄. 가족이 이렇게 가까워질 줄. 매일 조금씩의 기적이었다.
벤치에 앉아 다짐했다. 26일이 남았다. 100일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달리기는 멈추지 않겠다. 글쓰기도 멈추지 않겠다. 뒤를 돌아보며 앞을 살아가겠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대로.
🌙 저녁의 인생 정리
밤 9시, 노트에 "인생을 다시 읽으며"를 적었다.
48년간 잘한 것:
-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
- 건강한 아들을 키웠다
-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 자주는 못 가도 꾸준히 갔다
- 직업을 유지했다
- 포기하지 않았다 (공황장애 앞에서도)
- 74일간 매일 글을 썼다
- 6개월 넘게 매일 달렸다
48년간 아쉬운 것:
-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지 못한 것
- 부모님께 더 자주 가지 못한 것
- 감정을 너무 오래 숨긴 것
- 완벽주의로 많은 것을 놓친 것
- 기쁨을 너무 오래 잃고 산 것
앞으로 살아갈 방향:
- 가족이 우선이다
- 부모님이 계신 동안 더 자주 뵙겠다
-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겠다
- 완벽보다 진행을 선택하겠다
- 매일 작은 기쁨을 찾겠다
- 74일처럼, 26일 더, 그리고 평생 계속
☕️ 48세, 돌아봄의 가치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연휴 3일이 선물이었다. 고향에 가고, 부모님을 뵙고, 앨범을 보고, 인생을 돌아봤다. 빠르게 사는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멈춰야 할 수 있는 것들.
48세. 인생의 절반이 지났다. 어쩌면 절반 이상이.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감사한 것도 많다. 살아있다는 것. 가족이 있다는 것.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 아직 성장하고 있다는 것.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살까. 처음 절반과 같이 살면 안 된다. 더 느리게. 더 깊이. 더 감사하며. 더 사랑하며. 74일간 배운 것들을 가지고. 키르케고르가 말한 대로. 뒤를 보며 이해하고, 앞을 보며 살겠다.
✨ 인생을 돌아보는 법
노트에 실천 방법을 적었다. 첫째, "정기적으로 멈추기". 연휴, 생일, 기념일.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갖기. 둘째, "기록 들여다보기". 일기, 사진, 편지. 과거의 나를 만나기. 셋째, "감사 목록". 잘한 것들, 감사한 것들.
넷째, "아쉬움 인정하기". 후회를 직면하되 자책하지 않기. 배움으로 전환하기. 다섯째, "앞으로 방향 잡기". 돌아봤으면 앞을 보기. 구체적으로. 여섯째, "지금 이 순간".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일곱째, "계속 기록하기".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에 돌아볼 과거가 된다.
🌟 오늘의 약속
눈을 감으며 다짐했다. 더 자주 돌아보겠다. 빠르게만 달리지 않겠다. 멈춰서 뒤를 보겠다. 이해하고, 감사하고, 수정하겠다. 그리고 다시 앞을 향해 걷겠다. 키르케고르처럼, 뒤를 보며 이해하고 앞을 보며 살겠다. 74일이 그것을 가르쳐줬다.
다시 일상이다.
하지만 연휴가 달라놓은 것이 있다.
뿌리를 확인했다.
인생을 돌아봤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더 선명해졌다.
고향과 가족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나는 다시 앞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