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시골에 부모님께 전화를 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11월 2~3주 차에 김장을 하기로 했는데
오신다는 말이 없던 고모도 와 계시고
김장에 대해 물어도 제대로 답변을 안 하셨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박여사가 손이 불편하니 우리에게 이야기 안 하고
살짝 김장을 하실 계획인 듯했다.
벌써 배추는 다 뽑아서 절인 듯하고
김치를 버무리는 작업을 해야 할 듯한데
평일이고 박여사는 손이 안 좋으니
내가 금요일 아침 일찍 내려가기로 했다.
올해 날씨가 안 좋아서 배추 가격, 고추가격, 무 가격이 너무 올라서
4인가족기준 김장비용이 42만 원으로 예년에 비해 20% 정도 더 든다고 한다.
그런데 농사일에 진심이신 부모님 덕분에
집에서 키운 배추 무 그리고 고춧가루까지 써서
넉넉하게 김장을 할 수 있어 이 또한 감사하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김장날이 되면 몇 안 되는 온 식구가 모여
배추를 뽑는 것부터 시작하여 절이고 버무리고
김치도 종류별로 담아야 하기에 2박 3일의 대작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늘 하기 전에 올해는 조금만 하자고 다짐하여
점점 김장하는 양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다른 집들에 비하면 식당 수준으로 김장을 한다.
금요일 오전 일어나는 데로 준비를 하고 네비를 찍어본다.
늘 서울을 빠져나가기가 힘들어
출근 시간만 피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막히는 구간이 없었다.
아메바가 등교를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차는 밀리는 않았는데
단풍이 절정인 강원도로 가을여행 떠나는 단체관광객들이 많은지
버스전용차로나 휴게소에는 버스가 넘쳐났다.
단체로 단풍여행 같은 거 가면 재미있나?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1인의 궁금증이다.
버스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모습들이 그려지는데
요즘은 없어진 문화인지도 궁금하고 ㅎ
도착하면 바로 일을 해야 하기에
배를 좀 채우고 가기로 한다.
휴게소하면 역시 라면이다.
서울 양양을 지나다니면 늘 홍천 휴게소에 선다.
하행이면 가평은 좀 가깝고 홍천이 중간
상행도 내린천은 너무 가깝고 홍천이 중간이다.
그러다 보니 늘 홍천 휴게소 라면을 먹는데
라면이 꼬들한 것이 입맛에 딱이다.
서둘러 한 그릇 뚝딱하고 다시 운전을 이어간다.
도착하니 벌써 절인 배추는 씻어 물끼를 빼는 중이고
배추양념을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이웃에 사시는 분이 도와주려고 오셔서
손이 하나 늘어나니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역시나 적게 한다고 했지만 올해도 거의 200 포기는 되어 보였다.
곧 본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 역할은 물기 빠진 배추가 떨어지지 않게 작업장에 채우고
배추가 김치가 되어 김치통에 담기면
그 통을 꺼내 주위를 닭아 주고 뚜껑을 찾아 덮고 정리하는 역할이다.
분명 메인작업은 아니지만 필요한 작업이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할 일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는데
뭔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오전 일찍부터 시작한 김장은 저녁이 늦도록 지속되었다.
그나마 배추김치, 섞박지, 생채 이렇게 3가지로 가짓수가 줄어서
예전에 2박 3일 하던 일정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번 김장에는 노동주도 없고 수육도 없었다.
박여사가 있었으면 노동주도 한잔하고
수육도 삶고 할 텐데 역시나 흥이 안 난다.
점심도 간단히 김장김치에 밥을 먹었다.
보통 김장하는 날 저녁은 수육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 원칙인데
외식하기 그렇게 싫어하시는 아버지가 웬일로 나가서 저녁을 먹자고 하신다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보니 또 저녁상 차리고 치우는 것이 불편해 보이 신듯하다.
그렇게 나가서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들어와서
김장을 마무리하고 정리까지 완료했다.
그때 시간이 거의 9 시가다 된 것 같다.
몸도 피곤하고 고모랑 소주를 한잔 했다.
마침 외숙모께서 낮에 문어랑 양미리를 사다 주셔서
좋은 안주가 있으니 피로도 씻을 겸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마신술은 각 3병씩....
술이 들어가니 피곤함도 좀 사라지고 졸리기 시작했다.
내가 온 덕분에 거들 사람이 있으니 아버지는 다른 일을 하셨다.
올해 감이 풍년이라 여기저기 주문이 많아서 따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비소식이 있어서 초초해하셨는데
마침 내가 와서 감을 다 따고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은 나무에도 가지가 부러질 듯 많이도 탐스럽게 달렸다.
그리고 어머니도 김치를 버무릴 수 있어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그렇게 다행히 도움 되는 김장을 마무리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비 오는 양이 제법 많았다.
오후에 미용실 예약이 있어 서둘러 출발을 했다.
늘 그렇듯 오늘도 트렁크는 가득이다.
어제한 김장김치와 배추, 무, 호박, 양배추, 반찬들과
2주 전 가져온 단감을 박여사가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
단감을 한 자루 따서 차에 실어 주셨다.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하여 집으로 향했다.
집에 짐을 내리자마자 또 미용실로 이동한다.
나이를 먹었다. 피곤한다.
머리 자르는 내내 졸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어서 잠들었다.
몇 시간 자고 깨어나 화분을 봤는데
불과 이틀전까지 봉오리만 있던 극락조가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꽃을 피웠다.
꽃을 보니 정말 새를 닮았다.
극락조라는 이름도 꽃이 뉴기니 인근 서식하는
극락조라는 새의 모습과 닮아서 극락조화라고 한단다.
정말 새가 되고 싶은 꽃이라는 표현이 찰떡이다.
영구불편, 신비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길조 식물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다.
김장 끝나면 한 해 농사의 모든 일이 끝난다고
김장해놓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그 옛날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긴 겨울을 김치가 없으면 먹거리가 부족했을 테니
김장을 하여 땅에 묻고 나면 자연그럽게 뭔가 든든하고
걱정거리가 하나는 해결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농사의 마지막 김장을 마무리했다.
부모님 덕에 김치 걱정 없이 매일을 살 수 있어 참 감사하고 다행이다.
난 김치는 사서는 못 먹겠다. ㅎ
시골에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1박 2일 김장투어로
400km 운전을 하고
적당한 노동
그리고 조금 과한 음주로
피곤함이 몸을 사로잡았다.
그럴 때는 역시 반신욕이 최고다.
오늘은 반신욕 후 일찍 자야겠다.
모두 즐겁고 편안한 주말 되길 빈다.
단풍여행 가지 마라.
오다 보니 고속도로가 주차장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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